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953
《미니컬러백과 19 세계의 군함》
편집부 엮음
능력개발
1984.11.15.
1984년에 1000원짜리 작은책은 그무렵 어른한테 그리 안 비쌀 수 있으나, 주머니가 홀쭉한 어린이로서는 엄두를 못 낼 만한 값입니다. 그때 어린이는 버스삯을 60원을 치렀습니다. 요사이는 나라 곳곳에서 어린이는 그냥 타거나 50원만 내도록 바꾸어 가는데, ‘어린이 에누리’가 생기지 않던 즈음을 헤아리면 2020년 즈음 어린이 버스삯은 800∼1000원입니다. ‘미니컬러백과 19’인 《세계의 군함》을 장만하자면, 지난날 어린이는 버스길을 17판쯤 걸어서 차곡차곡 모아야 했습니다. 또래나 언니동생은 아침저녁으로 배움터 앞 길가나 글붓집(문방구)에서 군것질을 했지만, 번데기도 떡고치도 뽑기도 쫀득이도 오징어다리도 눈을 질끈 감고서 여섯 해 내내 푼돈을 아끼고 모았어요. 만화책을 살 밑돈에다가 ‘미니컬러백과’를 모으려고 했어요. 열흘쯤 걸어다니며 모은 밑돈으로 눈물겹게 작은책을 장만하는데, 우리 어머니는 “공부하는 책이 아니잖아!” 하면서 저 몰래 내다버리시기 일쑤였습니다. 버려지면 다시 걸어다니면서 푼돈을 모아서 또 사고, 또 버려지면 새로 걸어다니면서 푼돈을 모아 다시 사는데, 이럭저럭 열 가지쯤 모았으나 딱 하나를 빼고는 모두 제 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가 또또 버리셨고, 동무나 마을 동생이 빌려가서 안 돌려줬거든요. “이그! 또 샀니?” 하고 나무라기 앞서 “어쩜! 넌 그렇게 밑돈을 모을 줄 아는구나?” 하고 다독이면서 길을 잡아 줄 수 있었을 텐데 싶어요. 그나저나 ‘능력개발’에서 선보인 ‘미니컬러백과’는 몽땅 일본책을 훔친 줄거리에 판짜임입니다. 어릴 적에는 몰랐으나, 어른이 되어 낱말책을 엮는 일을 하며 여러 나라 책을 두루 찾아보다가 뒤늦게 알아챘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