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둘이서 오늘을 (2021.10.9.)
― 인천 〈북극서점〉
그림책 《하루거리》를 선보인 김휘훈 님하고 둘이서 마을책집 〈북극서점〉에서 “그리는 노래꽃, 노래하는 그림”이라는 이름으로 보임꽃(전시회)을 한 달 동안 폈습니다. 한글날을 맞이해서 이야기꽃을 함께 꾸립니다. 붓으로 편 그림으로는 “그림책은 그림으로 오늘을 노래합니다”를 밝힙니다. 붓으로 연 글로는 “노래꽃(동시)은 노래로 삶을 그립니다”를 속삭입니다.
손에 쥐는 붓은 그림붓이면서 글붓입니다. 마음붓이면서 생각붓이고, 하루붓이면서 오늘붓입니다. 이야기붓이면서 노래붓이고, 살림붓이면서 사랑붓입니다.
아름다운 붓이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아름답게 일구고 싶은 꿈을 그리기에 그림도 글도 이야기도 아름답게 여밉니다. 가없이 길어올리면서 끝없이 솟아오르는 사랑을 붓 한 자루로 옮깁니다.
둘레에서는 으레 ‘장애·비장애’를 나란히 쓰기도 하는데, 두 낱말은 한자말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걸리적·안 걸리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얄궂다고 느낍니다. 애써 가를 까닭이 없이 나란히 ‘사람’으로 바라볼 노릇이에요. 말을 더듬으면 더듬을 뿐이고, 다리를 절면 절 뿐이고, 말을 못 하면 말을 못 할 뿐이고, 소리를 못 들으면 못 들을 뿐입니다. 키가 크거나 작으면 크거나 작아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속으로 빛나는 넋을 바라보면서 이름을 부를 일입니다. 나는 네 이름을 부르고, 너는 내 이름을 부르며, 우리가 선 이곳에서 숱한 이웃하고 나란하게 살아가는 오늘을 노래하기에 아름다워요. 아우를 줄 알면서 아늑히 안을 수 있기에 아름답습니다. 아끼고 돌보는 마음으로 따사로이 바라볼 수 있기에 어깨동무로 나아갑니다.
첫술에 배부르겠느냐는 옛말이 있어요. 처음부터 잘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고, 첫걸음을 떼면서 새롭게 배우고 익히고 품으면서 차근차근 나아간다는 뜻이며, 참(차다)에 이르는 길은 첫발을 떼는 작은 몸짓에서 비롯한다는 뜻이요, 찬찬히 하나씩 가만히 일구거나 가꾸면 어느새 넉넉히 이룬다는 뜻입니다. 모든 붓길은 첫길을 나서면서 느긋이 여미어요. 한달음에 이룰 붓살림이 아닌, 한 자락씩 천천히 펼 붓노래입니다.
우리가 읽는 책도 글 한 줄에서 비롯합니다. 처음에는 글 한 줄이요, 어느새 글 한 쪽이며, 차츰차츰 모으고 갈고닦아서 꾸러미 하나로 피어납니다. 차곡차곡 가다듬어 태어나는 책이요, 이러한 책을 조금씩 추슬러서 나누는 책집입니다. 숨을 한 줄기 마시고, 밥을 한 숟가락 뜨듯, 글 한 조각을 고요히 새기면서 걸어갑니다.
ㅅㄴㄹ
《결혼 따윈,》(다이스타, 2019.)
《하루거리》(김휘훈, 그림책공작소, 2020.1.30.)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숲노래·최종규·사름벼리, 스토리닷, 2020.3.10.)
《Der Maulwurf und die Berufe》(Manika Lemanova 글·Zdenek Miler 그림, leiv Leipziger Kinderbuch, 2015.)
《父さん、四○歲 詩人になる。五○歲 寫眞家になる。》(石川厚志, 雷鳥社, 2015.8.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숲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