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숨은책 207


《까치 울던 날》

 권정생 글

 제오문화사

 1979.1.25.



  사람은 어떻게 사람을 만날까요? 늘 수수께끼라고 여깁니다. 저는 중학교란 데부터 그만 다니고 싶었으나 1988년에 ‘중학교 자퇴’는 입도 벙긋할 수 없었고, ‘고등학교 자퇴’를 1991년에 입밖에 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994년에 대학교에 들어가고 보니, 대학생 노닥질이 너무 어이없더군요. 더는 참지 않기로 하면서 ‘대학교 자퇴’를 외치고서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라는 길로 삶을 틀었습니다. 신문사지국은 뭘 믿고 저를 일꾼으로 뽑았을까 궁금하지만, 저는 그때 새벽 두 시부터 네 시 반 사이에 일을 마쳤어요. 겉모습이 아닌 일매무새로 받아들여 주었다고 느껴요. 다른 눈치를 볼 일이 없이, 스스로 하루를 가꾸라고 가볍게 자리를 내주었구나 싶어요. 그 뒤로 1999년에 얼결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들어갔고, 2001년에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뽑혔고, 2003년에 이오덕 어른 글을 갈무리하는 자리를 맡았습니다. 한 칸씩 옮기는 자리마다 아무런 사람줄·배움줄·돈줄 없이 나아갔습니다. 여러 일을 맡는 동안 곧잘 생각에 잠겼어요. ‘나는 어떻게 이 일을 맡아서 한 발짝씩 내딛을 수 있을까?’ 1979년에 처음 나오던 무렵에는 그리 사랑받지 못 했다지만, 어느덧 이 책에 실린 글이 새롭게 여러 책으로 퍼져서 꾸준히 사랑받는 《까치 울던 날》입니다. 저는 2003년에 이 묵은 책을 처음 보았어요. 이오덕 어른 책시렁을 갈무리하다가 《까치 울던 날》이 애틋해 보여서 한참 만지작거리니, 이오덕 어른 큰아드님이 “자네 이 책을 모르나? 못 봤나? 자네처럼 책 많이 읽었다는 사람이 이 책을 모르네? 아버지한테 여러 권이 있으니 한 권은 자네가 가지게.” 하시더군요. 살림돈이 아주 바닥이라서, 책 살 돈을 돈터(은행)에서 찾고 나니 8만 얼마가 남던 2003년 11월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가난할 적에 곁을 내준 분이 있기에 늘 새롭게 배우면서 이 길을 걸었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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