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볕날 2024.8.16.쇠.
여름볕을 듬뿍 머금는 풀과 나무는 푸르게 뻗고 맑게 자란단다. 파랗게 일렁이는 바람빛을 가르면서 퍼지는 햇볕은 온누리를 살찌우지. 볕을 머금기에 자라고, 볕을 맞이하기에 살아. 풀은 겨울에 줄기가 시들 수 있지만, 뿌리는 고스란하고, 때로는 씨앗을 남겨서 겨울을 보내지. 그런데 풀도 나무도 겨우내 햇볕을 머금는단다. 아무리 추운 날씨여도 볕은 부드럽게 달래면서 퍼져. 도무지 볕살을 못 느끼겠구나 싶으면 잔뜩 웅크린 채 깊이 잠들지. 겨울잠에 드는 곰이나 다람쥐나 나비가 죽었다고 여기지 않아. 겨울에 줄기를 안 올리는 풀은 죽지 않았어. 겨울에 잎을 안 내는 나무도 안 죽었어. 알은 죽은 목숨이 아니야. 알인 채 겨울을 나는 목숨도 그저 깊숙이 잠들었을 뿐이야. 사람이며 뭇짐승은 어미가 배에 새 목숨인 아기를 품는데, 아기가 어미 배에서 새근새근 잔대서 ‘죽었다’고 여기지 않아. 게다가 엄마씨랑 아빠씨도 저마다 몸에서 살아숨쉬는 빛줄기란다. 빛씨앗이지. 이 별에서 삶을 잇는 모든 목숨붙이는 볕을 쬐기에 살아. 볕을 안 쬐거나 못 쬐면 시들거리고 앓고 죽어가지. 예부터 어느 겨레도 마찬가지인데, 풀한테서 얻은 실로 가볍게 옷을 지었고, ‘풀실’을 엮어서 짠 옷은 늘 볕을 듬뿍 품는단다. 이와 달리 요즈음은 “볕을 튕기는 시늉실(화학약품으로 만든 제품)”로 옷을 차리니, 다들 볕을 안 머금네. ‘양복·제복·교복·군복’을 보렴! 모두 죽음딱지로구나. 삶결도 살림결도 없는 “화학소재 시늉옷”을 걸치면, 이러면서 볕날에 볕을 안 쬐면, 넌 스스로 죽으러 달려가는 셈이란다. 볕을 머금은 낟알과 푸성귀와 열매를 밥으로 삼을 때라야, 해처럼 환하고 튼튼하단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