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골목 고을 곳 꼬마 (2024.8.23.)

― 전북 전주 〈책보책방〉



  꽃잎을 바라보며 거닐 줄 안다면, 늘 하루하루 빛난다고 느낍니다. 풀잎을 헤아리며 걷다가 문득 서서 하늘을 볼 줄 안다면, 언제나 오늘 이곳부터 반짝인다고 느낍니다. 몸이나 마음이 아플 적에는 허물을 벗고서 나아가야 하는 때이지 싶어요. 여름에는 실컷 더위를 머금고서 가을에는 기쁘게 바람노래를 맞이하기에 겨울에는 새롭게 기지개를 켜면서 꿈을 그리는구나 싶습니다.


  이튿날 낮에 진주로 갈 일이 있어서 하루 일찍 집을 나섭니다. 한밤에 일어나서 새벽까지 일손을 여미다가 움직이느라 시외버스랑 기차에서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전주에서 내린 뒤에는 해랑 구름을 올려다보면서 천천히 걷고, 시내버스를 타고서 나래터(우체국) 가까이에서 내린 뒤에 또 걷습니다.


  이제 마을책집이 열었을까 어림하면서 〈서점 카프카〉 앞으로 오는데, 이 둘레에서 찰칵찰칵 찍는 아가씨가 제법 있습니다. 덩굴잎에 덩굴줄기가 드리운 책집 어귀는 푸르게 멋스럽지요. 〈카프카〉에 깃들까 하다가 조금 더 걷습니다. 안골에 더 고즈넉이 깃든 〈책보책방〉으로 들어섭니다.


  ‘책보’라고 한다면, 책벌레나 책쟁이를 나타내는 ‘보’이면서, 눈으로 알아본다는 ‘보’일 테고, 새롭게 피어나는 철인 ‘봄’일 테며, 부드러이 감싸는 숨결이 흐르는 ‘보(보자기·보퉁이)’에, 보글보글 올라오는 동그란 무늬처럼 보듬보듬 보살필 줄 아는 ‘보’라고 느낍니다. 봉긋방긋 웃는 보드람빛일 테고요.


  전주 〈책보책방〉에는 ‘별이’라는 곁개가 나란합니다. 곁개는 책손이 저랑 놀아주기를 바라면서 끌신을 물어가기도 하고, 가볍게 짖기도 하고, 옆에 나란히 앉아서 끙끙거리기도 합니다. 시골 고흥에서 밤을 새우고서 전주마실을 한 터라, 책만 가볍게 둘러보고서 일찍 길손집에 깃들어 곯아떨어질 판이기에, 곁개랑 놀 기운은 없습니다. 곰곰이 보면, 집안일을 할 적이든 바깥일을 볼 적이든, 마지막힘을 모두 짜내어 마치고 난 뒤에 벌렁 쓰러지고서 꿈나라로 갑니다.


  골목이란 곱고 고르게 잇는 길입니다. 고을이란 여러 이웃집이 곰곰이 모여서 고즈넉이 어우러진 터전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란, 집이나 삶터나 마을이면서 일터에 놀이터이고 쉼터에 만남터입니다. 우리는 서로 이곳에서 꽃처럼 곱게 새로 얽고 이으면서 이야기를 이룹니다. 아직 꼬마인 나를 돌아보며 반갑게 배웁니다.


  시골에서 언제나 벌나비랑 동무하고 풀벌레랑 이웃하면서 말밑을 하나둘 풀어내곤 합니다. 풀이름은 풀이 알려주고, 나무이름은 나무가 가르쳐요. 바람과 바다는 숨결과 노래를 속삭이고, 새는 하늘빛과 땅빛을 이어요. 이 사이에서 포근합니다.


ㅅㄴㄹ


《타오 씨 이야기》(장재은, 사계절, 2024.5.30.)

《가고 싶은 대로》(장 이브 카스테르만/하리라 옮김, 파랑서재, 2023.7.10.)

#JeanYvesCasterman #lovelyfamily

《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가즈오 이시구로/김남주 옮김, 민음사, 2021.4.2.)

《봄비 한 주머니》(유안진, 창작과비평사, 2000.4.1.)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하이타니 겐지로/편집부 옮김, 남녘, 1988.4.10.)

《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메디치, 2014.2.25.첫/2017.9.20.175벌)

《운동장 편지》(복효근, 창비교육, 2016.3.25.첫/2018.12.31.7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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