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 숲노래 말넋
사라진 말 3 씨 2024.8.30.
“최종규 씨”처럼 부르는 말씨가 낮춤말이라고 여기는 분이 부쩍 늘어난다. ‘씨’는 높이는 말이 아니라 여길 수 있되, 낮추는 말도 아니다. 너랑 나랑 나란히 서는 삶이기에 서로 ‘씨’라는 말씨로 받아서 부를 만하다. 우리말씨를 보면, “우리 어머니”나 “우리 오빠”라 할 뿐, ‘-님’을 안 붙인다. 이웃이나 동무를 만날 적에 비로소 “동무네 아버님”이나 “너희 누님”이라 한다. 어버이하고 아이는 위아래가 아닌 나란사이라 할 만하다. 둘은 늘 스스럼없이 마주하는 사랑이다. 그래서 어버이하고 아이는 서로 ‘-님’을 안 붙인다. 나란하며 스스럼없는 둘이 서로를 차분히 이르고 싶다면 ‘씨’를 붙일 만하다. ‘씨’란 ‘氏’라는 한자가 아닌, 그냥 우리말씨인 ‘씨’요, 풀꽃나무로 자랄 ‘씨앗’을 가리키고, 앞으로 깨어나거나 자라날 알찬 빛인 ‘씨알’을 가리킨다. ‘씨’란 ‘심’을 품은 작은 알갱이일 테니, ‘심다’로 나타내듯, 땅에 심(힘)을 담아서 북돋우는 첫길이자 첫빛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씨·씨앗’ 같은 말을 안 쓰려고들 하더라. 으레 ‘종자(種子)’라는 한자말에 파묻힌다. ‘씨앗집(씨앗가게)’이라 안 하고 ‘종묘상’이라 할 뿐 아니라, ‘텃씨’라 안 하고 ‘토종 종자’처럼 겹말을 함부로 쓰더라. 서울(도시)에서 살더라도 텃밭을 돌보는 이웃이 있지만, ‘텃밭’이란 “집에 붙어서 가까이 드나들며 돌보는 자리”를 가리켜야 알맞다. 멀리 찾아가는 곳은 ‘먼땅’이다. 우리말 ‘밭다’는 ‘바투’요, ‘바싹 붙은’ 데를 나타낸다. 그러니까, ‘밭’이란 낱말을 잊고 ‘밭’이란 땅도 잃으니, ‘텃밭’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터라 ‘씨’라는 낱말을 까맣게 잃어버릴 만하다. 우리 손씨(솜씨)를 북돋우면서 우리 마음씨를 가꾸어야 비로소 우리 글씨(글심기 : 문학창작)도 펼 텐데.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