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케이스 - 국가상징에 대한 한 연구
이해영 지음 / 삼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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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4.8.16.

인문책시렁 364


《안익태 케이스》

 이해영

 삼인

 2019.1.15.



  어느 한 사람을 훌륭하게 떠받들려고 하면 으레 곪더군요. 이를테면 박정희나 이승만을 추켜세우려고 할 적마다 고름이 물씬 배어나옵니다. 이들은 우두머리로 올라앉아서 사람들을 우려내고 윽박지르고 짓뭉개는 얼뜬 하루를 보냈어요. 우리 살림살이는 누가 이끌었기에 나아지지 않습니다. 우리 살림살이는 바로 스스로 일군 땀방울로 맺습니다. 때리고 쥐어짜고 떠밀면서 억지로 올린 돈값이란, 허울스러운 거품입니다. 이런 거품은 오래지 않아 스러져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까닭을 다들 쉽게 잊습니다. 풀죽임물도 비닐도 플라스틱도 죽음거름도 없이, 그저 스스로 돋고 시들고 돌고도는 숲이 있기에 모든 사람이 숨을 쉬면서 삶을 짓습니다. 숨을 안 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잘난놈도 못난이도 숨을 쉬어야 합니다. 우두머리도 허수아비도 숨을 쉬어야 합니다. 서울내기도 시골내기도 숨을 쉬어야 하지요.


  돈을 잔뜩 벌더라도 숨을 못 쉬면 죽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늘 엉뚱한 곳을 쳐다보면서 길을 잃거나 헤매는 굴레예요. 사람이 사람다운 까닭은, 우리가 먹고살 만한 바탕은, 이 나라가 버티는 밑동은, 바로 들숲바다와 해바람비입니다.


  《안익태 케이스》(이해영, 삼인, 2019)는 ‘안익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일본앞잡이나 일본노리개나 일본허수아비로 실컷 노닥거린 뒤에 슬그머니 에스파냐로 달아나서 숨다가, 슬금슬금 기어나와서 마치 예전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꺼풀을 씌워서 돈벼락을 맞고 싶던 딱하고 안쓰럽고 가엾고 안타까운 아재 한 사람이 어떤 길을 걷는 굴레였는지 차근차근 짚습니다.


  여러모로 알차고 알뜰한 줄거리입니다. 그러나 아주 크게 하나가 엇나갑니다. 일본앞잡이인 ‘에키타이 안’이었다는데, ‘에키타이 안’을 나무라는 글결이 온통 일본말씨입니다. 우리말씨가 아닌 일본말씨로 ‘에키타이 안’을 꾸짖고 타이르는 글이란, 이리 보건 저리 보건 똑같이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왜 우리말을 못 쓸까요? 우리는 언제쯤 우리말을 배울 셈일까요? 일본노리개를 타이를 적에 일본말씨를 써야 할까요? 일본허수아비를 다그칠 적에 일본말씨밖에 할 말이 없을까요?


  하나부터 열까지 낱낱이 가다듬거나 추스르기 어렵더라도, 하나씩 차근차근 가다듬어서 바로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루에 한 낱말씩 다듬고, 한 달에 한 말씨씩 바로세우고, 한 해에 한 꾸러미씩 돌아볼 줄 알 때에, ‘에키타이 안’ 같은 부스러기쯤은 손쉽게 털어낼 만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아름답게 일어서면 보푸라기란 저절로 사라집니다.


ㅅㄴㄹ


전시의 만주국 고위 외교관이 안익태를 그저 ‘대성’시키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사저로 불러들여 먹이고 재우고 했다면 ‘내선일체’의 참으로 눈물겨운 미담이 아닌가. (43쪽)


에키타이 안은 에하라 고이치에게 그가 기대하는 대일본제국과 나치 독일의 고급 프로파간디스트Propagandist로서 용역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고, 그 대가로 여전히 그 전모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편익을 수수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전, 그의 스페인 도주는 마찬가지 일제의 유럽 첩보망과의 연관에서 보자면 어쩌면 그 자체로 잘 준비되고 기획된 일일지도 모른다. (55쪽)


지금도 우리는 〈한국 환상곡〉 피날레에서 만주국의 선율을 부르고 또 듣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날 일본어로 불린 에하라의 합창 부분 텍스트는 이렇다. “1. 10년 세월 제국은 무르익었다. 부지런한 땀은 보답 받았네. 민중은 환호한다. 나라는 저 멀리 빛난다. 2. 하나의 생각으로 통일되어 사람들은, 희망에 차 번성한다. 난蘭은 환히 피었고, 새 질서의 첫 열매가. 3. 우리는 일본과 굳건히 연결되었네. 이 신성한 목표 속에 하나의 심장과도 같이, 영원한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라네. 독일이여, 또한 이탈리아여, 힘을 냅시다. 4. 영원한 봄날은 이미 가까이 와 있네. 모든 족속 만족해할 그날이. 보라! 저 만주 평원 위에, 향기로운 난 환히 피었다.” (101쪽)


전쟁의 한복판 할우하루 고단한 삶을 견뎌야 했던 혹한 속의 비엔나 시민들이 에키타이 안의 일본어로 된 오족협화의 선율에 진정 위로를 받았을까. 그가 일본 건국 기념일에 〈만주국〉을 통해 비엔나 시민들을 위무하고 전의를 독려하던 그 시간대, 조선의 민중들은 나날이 일제의 탄압과 수탈, 그리고 강제징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109쪽)


스스로 만든 〈애국가〉를 ‘매국’의 도구로 재활용하다 그것을 다시 애국이라 주장하면서 그 중간 과정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우긴다면 그것은 차라리 언어도단이라고 해야 할 게다. (131쪽)


만주국 건국대학 교수 최남선은 해방 후 〈자열서〉라는 어정쩡한 반성문이라도 제출해야 했지만, 안익태에겐 그런 통과의례조차 없었다. 그냥 침묵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에키타이 안은 가만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안익태로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156쪽)


근 반세기가 지나 이제야 공개된 이승만에 대한 안익태의 청탁 리스트를 어떤 ‘예술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분별없는 마구잡이 청탁에 차라리 분별 있게 대응한 건 이승만이었지 않은가. 주미 대사관 자리 청탁에서 시작해 카네기홀 콘서트 주선, 본인이 주인공인 뮤지컬 영화 지원, 한미 문화 협회, 국제 음악제 그리고 미국 내 유명 연주 단체 협조 요청까지 꽤나 긴 이 청탁 리스트에서 그래도 이승만 하야 후 그나마 성사된 건 국제 음악제뿐이 아닌가 싶다. (165쪽)


+


저자 誌

→ 글쓴이

→ 지은이

7


특히 애국가, 혹은 국가國歌는 가장 고도한 음악적 정치 현상이나 행위 중 하나다

→ 그런데 나라사랑노래나 나라노래는 나라를 노래로 몹시 내세운다

15쪽


에키타이 안의 행적에는 여전히 너무나 많은 의문부호가 달려 있다

→ 에키타이 안이 걸은 길은 아직 너무나 많이 물음꽃이 달린다

→ 에키타이 안은 그야말로 너무나 알쏭달쏭한 발자국이다

→ 에키타이 안이 무엇을 했는지는 늘 너무나 궁금하다

54쪽


나치 독일의 고급 프로파간디스트Propagandist로서 용역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고

→ 나치 독일에 대단한 떠벌쟁이로서 틀림없이 땀을 바쳤고

→ 나치 독일에 빛나는 알림꾼으로서 뚜렷하게 일을 했고

→ 나치 독일에 높직한 나불꾼으로서 똑똑히 품을 팔았고

55쪽


그 대가로 여전히 그 전모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편익을 수수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 이 값으로 아직도 다 알 수 없는 숱한 돈을 빼먹은 대목은 아니라 하기 어렵다

→ 이 몫으로 오늘도 모두 알 수 없는 온갖 길미를 누렸으니 숨기기 어렵다

55쪽


그의 사저에서 기식하던 중이었다

→ 그이 홑채에서 묻어살았다

→ 그이 혼채에서 얹혀살았다

75쪽


비엔나 시민들이 에키타이 안의 일본어로 된 오족협화의 선율에 진정 위로를 받았을까

→ 비엔나사람이 에키타이 안이 일본말로 지은 한닷겨레 가락에 참말로 마음을 달랬을까

→ 비엔나사람이 에키타이 안이 일본말로 쓴 온닷겨레 노랫가락에 참말 마음을 녹였을까

109쪽


강제징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그저 다른 나라 얘기라고 할 것인가

→ 종살이에 내몰렸다고 말한다면 그저 다른나라 얘기라고 할 텐가

→ 들볶이며 고달팠다고 말한다면 그저 다른나라 얘기라고 할 셈인가

109쪽


그 중간 과정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우긴다면 그것은 차라리 언어도단이라고 해야 할 게다

→ 이 사이를 마치 없었다고 우긴다면 차라리 말장난이라고 해야 한다

→ 이 틈새를 마치 없었다고 우긴다면 차라리 바보라고 해야 한다

→ 이 사잇길을 마치 없었다고 우긴다면 아주 웃기지도 않는다

131쪽


친일 부역의 형태와 경로도 처해 있는 구체적인 조건에 의해서 규정되기 마련이다

→ 일본따라지도 모습과 길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다르게 마련이다

→ 일본앞잡이도 몸짓과 걸음에 따라서 다르게 마련이다

132쪽


여기에는 약간의 이설도 있다

→ 좀 딴얘기도 있다

→ 조금 엉뚱한 말도 있다

→ 퍽 엇갈리는 말도 있다

141쪽


안익태에겐 그런 통과의례조차 없었다

→ 안익태한텐 그런 디딤길조차 없었다

→ 안익태한텐 그런 들머리조차 없었다

→ 안익태한텐 그런 너울목조차 없었다

156쪽


에키타이 안과 안익태 간의 ‘해리적解離的’(dissociative) 정체성 간격이 확장될수록 거대 서사, 과잉 서사의 편향은 심해지기 마련이다

→ 에키타이 안과 안익태가 갈라질수록 더 외곬로 부풀리고 덧입히게 마련이다

→ 에키타이 안과 안익태가 엇갈릴수록 자꾸 기울면서 부풀리고 꾸미게 마련이다

173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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