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깃들다 (2024.4.20.)
― 부산 〈문우당〉
봄비가 시원하게 적시는 길을 맨몸으로 거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매한가지입니다. 빗줄기를 사랑하면서 등줄기를 곧게 펴고는 마음줄기를 정갈히 씻는 이웃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나라 곳곳에 비노래를 부르면서 맨몸으로 활짝 웃는 동무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맨손과 맨발로 살림을 짓는다면, 겉치레에 안 휘둘리면서 민낯(진실)을 알고 알리려고 온힘을 다하겠지요.
해바람비를 등진다면 동무나 이웃이 아니라고 느껴요. 뭇숨결은 햇볕을 머금으며 자라고, 바람을 마시면서 싱그럽고, 비를 먹으면서 아름답습니다. 해바람비를 등진다면 거짓(겉모습)을 품는다는 뜻이요, 들숲바다를 모른다는 얼거리예요.
몇몇 끄나풀이나 우두머리가 잘못하기에 나라가 어지럽지 않습니다. 허울(겉·거짓)이 아무리 좋더라도 빈수레일 뿐인데, 허울좋은 길을 붙잡는 모든 사람이 나란히 얄궂습니다. 그들(권력자)이 총칼을 목돈으로 만들더라도 우리가 다부지게 내칠 줄 안다면, 푸른별에는 아무런 싸움이 없어요. 그들이 돈과 이름으로 사납짓을 일삼더라도 우리가 스스럼없이 물리칠 줄 안다면, 파란별은 늘 눈부십니다.
빗길을 걸어서 〈문우당〉으로 갑니다. 저녁나절에 펼 이야기를 헤아리면서 작은책집에 깃듭니다. 예전에는 남포동에서 꽤 크게 꾸린 〈문우당〉이라는데, 이렇게 작게 바뀌었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름값으로 할 수 없듯, 글이나 책도 이름값을 걷어낼 적에 비로소 쓰고 읽고 나눌 만합니다. 작은책집이라면 “이름값 아닌 오직 사랑이라는 살림빛”으로 여민 책을 품고서 나눌 일이에요.
이름값이 아닌 살림빛으로 가득한 책만 가려서 놓는다면 아마 처음에는 꽤 벅찰 수 있어요. 그러나 살림빛으로 넘실거리는 책을 둘레에 나누면서 천천히 피어나려고 한다면, 책이웃 누구나 새롭게 눈뜰 테지요. ‘이름·허울’로 ‘부산’을 내세우더라도 ‘부산을 말하는 책’이지 않습니다. 뒷돈(지원금)을 받아서 허둥지둥 여민 꾸러미가 너무 많아요.
뒷돈은 안 나쁩니다. 구린 뒷짓이라면 엉터리일 테지만, 뒷사람·뒷아이를 헤아리면서 뒷날에도 새롭게 빛날 이야기를 여미려는 뒷배를 이루는 뒷돈이라면 알차지요. ‘이름이 나쁘지 않’되, ‘이름을 앞세우니 어설플’ 뿐입니다. ‘씨앗(희망)’이란, 민낯과 참거짓을 가만히 가려내는 눈을 뜨는 몸짓이면서, 이 삶에 사랑이라는 살림숲을 헤아리는 작고 수수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저마다 조그맣게 씨앗이에요. 누구나 다 다르게 온누리를 천천히 살리는 사랑씨앗이라고 느낍니다. 비오는 날은 맨발로 걷거나 달리면 한결 시원합니다.
ㅅㄴㄹ
《외할머니》(천화순·김규리, 이내책방 사이숨출판부, 2019.11.30.첫/2023.11.14.2벌)
《서점 창업》(책이있는자리·조준형, 독립출판·문우당서점, 2023.9.15.첫/2024.3.15.2벌)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난》(유지향, 산지니, 2022.6.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