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늘 배울 뿐이다. 좋은길이나 나쁜길은 없다. 모두 다르게 배움길이다. 나는 글쓴이나 펴냄터를 안 가린다. 배워야 하기에 읽는다. 문득 그대가 최종규라는 까칠쟁이 따위는 읽을 값어치가 없다고 여기면, 그대는 실낱만큼도 못 배우라는 담벼락을 스스로 쌓는 셈이다. 배우기에 누구나 젊고 어리다. 얼굴을 꾸미거나 고치거나 비싼옷 차려입기에 어려 보이거나 젊어 보이지 않다. 배우려 하고서, 배운 바를 익히려고 신나게 땀흘리니 누구나 맑고 밝아서 빛난다. 빛나는 얼굴은 어림이나 젊음이 아닌 빛살일 뿐이다.
나는 왜 모든 책을 다 읽어내려 할 뿐 아니라, 모든 읽은 책을 다 말하려 하는가? 까닭은 오직 하나이다. 배웠고 익혔으니, 둘레에 나누려 할 뿐이다. 나는 목소리를 안 낸다. 내가 쓴 글은 내 목소리가 아나라, 내 배움걸음과 익힘살림이다.
자난밤에 무릎셈틀(노트북)이 숨을 거두었다. 나는 배움살림을 걷느라, 무릎셈틀 살 돈을 못 모아서, 언니한테 사달라고 여쭈었다. 세 해쯤 망설이다가 여쭈었더니, 우리 언니는 "야, 네가 써야 하는데 바로 말해야지!" 하면서 나무랐다. 바깥으로 일을 다닐 적에 늘 크게 밑힘이 된 무릎셈틀인데 어느새 열 해 남짓 썼고, 그동안 두 번 손질(수리)을 맡겼다. 무릎셈틀도 내 책상셈들처럼 허벌나게 일했으니 쉬고 싶었으리라.
그러면 또 언니한테 창피를 무릅쓰고서 여쭈어야 할까?
지난밤과 새벽 사이에 끙끙 앓다가, 새벽 네 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오늘 부산 거제동 '책과아이들'에서 펼 '이오덕 읽기 모임' 밑틀을 돌아보려 하는데, 아차, 어제 부산 연산동 '카프카의밤'에서 이야기꽃을 펼 적에 '손글씨 밑틀(강의안)'을 통째로 놓고 온 줄 뒤늦게 알아챈다.
숨진 무릎셈틀에, 놓고 온 글자락이라니. 어제 2024년 7월 20일은 몹시 후덥지근했고 땀을 옴팡 흘렸다. 그래서 수첩가방을 다 한쪽에 벗어서 놓았는데, 이러다가 밑글꾸러미를 통째로 놓은 꼴이다.
아침 10시부터 '책과아이들'에서 이야기꽃을 펼 텐데, 스스로 참 갑갑하네 하고 돌아본다. 땀이 쏟아져도 수첩가방을 몸에 단단히 붙들어맸어야 했다고 뉘우치지만.
우리는 저마다 바보짓을 곧잘 한다. 실컷 깨지면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엊저녁에 정지돈이라는 글바치 말썽을 처음 들었다. 아직 그이 책을 따로 사서 읽은 적이 없다. 한국소설은 이미 끝났다고 여긴 터라, 새로 쓰는 국어사전에 소설 보기글을 담을 마음이 없어서 아예 안 읽다시피 한다.
시이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우리말로 바라보자면 다들 '이야기'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문학은 '이야기'란 없이 '짜맞추기'로 넘쳐난다. 한류 영화와 케이팝과 연속극과 웹툰도 이야기란 없이 짜맞춤(조합.배합)이다. 화학물질 농약과 똑같다.
나는 시골에서 살며 손으로 낫질 호미질을 성기게 할 뿐이라 농약을 아예 안 쓰니까, 농약을 빼다닮은 '서울짜맞춤 한국문학과 케이팝'은 하나도 안 쳐다본다.
잘잘못도 가릴 일일 터이나, 이미 '꿈(문학적 상상력)'부터 없이 문학예술이란 허울만 내세운 문단권력에 무슨 씨앗이나 빛이 있겠는가.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ㅅㄴㄹ
#숲노래 #최종규 #한국문학 #정지돈 #문단권력
#이오덕 #글짓기교육이론과실제 #최현배 #고등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