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저렇게까지 2024.6.26.물.



바람을 안 쐬는 사람은 해를 안 쬐려고 하지. 해를 안 쬐는 사람은 비를 안 맞으려고 하고. 비를 안 맞는 사람은 별을 안 보려고 할 텐데, 별을 안 보려는 사람은 무엇을 안 하려고 할는지 헤아려 보렴. 무엇을 기쁘게 보고 느끼고 겪고 하는 사람이라면, 두렵거나 거칠 일이 없어. “그냥 하는”하고 “기쁘게 하는”은 달라. “시켜서 하는”하고 “스스로 하는”은 다르지. 사람들은 땅이 베푸는 숨결을 그대로 누리기보다는 손길을 대려고 하지. 이를테면, 밭을 일구고 논을 갈아. 굳이 안 일구고 안 갈아도 땅은 모두한테 넉넉히 베풀지만, ‘몇 가지’ 낟알을 더 많이 거두어서 나라한테 바쳐야 하는 굴레를 살면서, 그만 논일과 밭일이 고되단다. 나라(정부)한테 바치지 않으면 구태여 잔뜩 안 지어. 생각해 보렴. 잔뜩 지어서 남으면 어떡하니? 다 썩거나 버릴 테지. 흙지기가 손수짓기를 할 적에는 ‘닷알온알(오곡백과)’이 아닌, ‘즈믄(1000)’ 알이나 ‘골(1000)’ 알을 고루고루 넉넉히 누렸어. 모든 풀과 나무는 저마다 다르게 잎과 줄기와 열매와 뿌리를 베풀 뿐 아니라, 푸른바람과 샘물을 베풀거든. 왜 저렇게까지 어느 일에 매달리거나 꺼리거나 붙잡거나 등지는지는 쉽게 알 만하단다. 다들 ‘나다운 숨’을 잊고 잃거든. 스스로 나다운 빛일 적에는 ‘남’이 아닌 ‘나’를 본단다. 스스로 나답게 하루를 빛낼 적에는 ‘바깥’이 아닌 ‘둘레’를 본단다. ‘둘레’란, ‘남’이 아닌 ‘너’야. 그러니까 ‘나’하고 ‘너’를 고르게 보고 두루 볼 줄 아는 눈이기에 스스로 하루를 짓고, 하늘을 보고, 해를 쬐며, 하나이자 모두인 넋을 가꾸는 마음으로 나아가지.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길을 차분히 맞아들이기를 바라. 이렇게까지 하거나 저렇게까지 닫아걸거나 안 대수로워. 온누리에는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없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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