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양파 2024.4.6.흙.
조그맣게 돋은 ‘쪽파’가 있어. 장대처럼 곧게 돋는 ‘대파’가 있어. 실처럼 가늘어 ‘실파’이고, 동글동글하니 ‘동글파(양파)’야. 발가락에 발바닥을 보듬으려고 ‘버선’을 꿰잖니? 그런데 왜 ‘양(洋)’을 붙여서 ‘양말’에 ‘양파’처럼 이름을 붙였을까? 참말로 곰곰이 생각을 하고서 붙인 이름일까? 생각을 잊은 채 어영부영 붙이고서 그냥그냥 바쁘게 부대끼면서 길든 이름일까? 차분히 바라보고 그리고 사랑할 적에 붙이는 이름은, 이 이름을 받아서 듣는 사람부터 즐겁고,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나란히 즐거워. 얼렁뚱땅 얼른 붙인 이름이 굳어서 퍼지면, “사랑 없이 가리키는 말”이 훅 번지지.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 아기를 번쩍 안으면 아기가 놀라. 사랑하지 않는 채 개구리를 만지거나 잠자리를 만지면 다치거나 죽어. 사랑하는 마음으로 쓰다듬으니 나무가 살아나고 씨앗이 싹을 틔워. 이 얼거리와 삶을 알겠니? 사랑을 담아서 부르고, 말을 터뜨리고, 이야기를 할 적에라야, 서로서로 살리는 기쁜 하루인 줄 알아차리기를 바라. 남이 사랑해 줄 이름이 아니야. 네가 스스로 사랑눈을 틔우면서 붙일 이름이야. 남이 마음에 들어 하기를 바라지 말고, 네가 네 말을 네 귀로 들을 적에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말씨를 가려서 쓰기를 바라. 뽐내는 이름이라면, 이윽고 힘이 다 뽑혀. 자랑하려는 이름이라면, 이내 재처럼 잦아들어. 미워하려는 이름이라면, 스스로 밀어뜨려서 다 부수지. 파뿌리 하나를 볼 적에도, 동글파 하나를 손에 쥘 적에도, 온사랑을 기울이면서 손빛을 나누기를 바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