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책빛 2024.4.7.해.



마음에 안 든다고 여기면서 빨리 하라고 다그칠 적에 휘두르는 ‘채찍’이야. 목숨을 빼앗지는 않되, 목숨을 갉으면서 괴롭히는 셈이지. 채찍질은 살리지 않아. 몰아대고 밀어대어 모두 들볶는 굴레란다. ‘책’이라는 꾸러미에 이야기를 안 담고서 줄거리로만 넘치게 채운다면 ‘채찍’과 같다고 여길 만해. 너희가 사는 곳에 있는 배움수렁(입시지옥)이란 바로 채찍이야. 꿈을 보거나 사랑을 그리는 길하고는 먼, 오직 더 높이 올라서서 둘레를 밟고서 서라는 굴레로 내모는 채찍인걸. 아무렇게나 채우면 ‘참’이 아닌 ‘차가움’이고 ‘차꼬’란다. 차갑게 얼어붙은 채, 발목을 쇠사슬로 채우는 차꼬로는, 한 걸음조차 내딛지 못 하면서, 마냥 매여서 허덕이겠지. 이와 달리, 차분하게 챙기면서 차근차근 채우는 길에 서면, ‘참’으로 나아가. 모자라지 않고 넘치지 않는 ‘참’을 이룰 수 있기에, 서로 착하게 만나고, 참하게 어울려. ‘책’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도 같아. 이야기를 이루는 말을 마음에 담는다면 새롭게 즐거울 만해. 이야기를 잊고서 마음을 억누른다면 새까맣게 타버리고서 새까맣게 사라진단다. 말 한 마디는 말빛이어야겠지. 살림살이 하나는 살림빛이어야겠지. 책이라면 책빛일 노릇이고, 손길이 닿는 곳마다 손빛이 흐를 노릇이고, 발걸음이 닿는 자리에 발빛(바탕빛)이 흐를 수 있기를 바라. 날마다 찾아오는 해는 햇빛으로 퍼져. 밤마다 드리우는 별은 별빛으로 밝아. 온누리를 푸근히 품는 풀은 풀빛으로 풀어내지. 네 숨빛을 읽고서 네 눈빛으로 담아서 둘레를 보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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