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쌓아서 2022.11.9.물.



피어나기에 지고, 지기에 피어나지. 일어나기에 앉거나 눕거나 가라앉아서 쉬고, 이윽고 새로 일어서서 활짝 피어나고. 봄은 여름을 어서 오라 부르고, 여름은 가을더러 얼른 오라 부르고, 가을은 겨울한테 곧 오라 부르고, 겨울은 봄을 가만히 오라 부르지. 쌓으면 짐이고, 짐이면 무거워. 나무 곁에 가랑잎이 그렇게 쌓이더라도 모두 몸을 내려놓고서 땅한테 스며드는 새흙으로 거듭나. 새흙은 나무 곁에서 포근히 자다가 풀한테 깃들어 풀잎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나무한테 찾아가 잎·꽃·열매·씨앗으로 거듭나기도 해. 이 풀잎·꽃·열매를 너희가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아! 풀꽃나무랑 흙이랑 숲이랑 땅이랑 비랑 바람이랑 바다랑 하늘이랑 햇빛이랑 별빛이 이와 같구나!” 하고 느끼곤 해. ‘몸으로 받아들인다’고 할 적에는 ‘밥으로 먹기’만 가리키지 않아. 눈으로 보고 코로 맡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살갗으로 느껴도 네 온몸으로 고루 받아들인단다. 그리고 뚝딱터(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을 밥으로 삼거나, 쇳덩이(자동차·기차·배·비행기)에 몸을 실을 적에는 이 ‘공산품’이나 ‘쇳덩이’가 나오기까지 거친 모든 길을 너희 온몸으로 보고 느끼고 읽지. 그래서 공산품이나 쇳덩이나 잿집(아파트)에서 오래 머물거나 내내 깃든다면, 너희 눈코귀입에 살갗에 마음은 풀꽃나무·들숲바다·해바람비를 아주 잊거나 등지고 말아. 바람빛도 햇빛도 별빛도 너희 몸에 쌓이다가 녹아들어. 잿빛도 죽음빛도 먼지빛도 너희 몸에 쌓이다가 고스란히 스며들지. 그래서 늘 생각을 하고 하늘을 볼 노릇이란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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