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할머니한테 2022.11.6.해.



누구나 처음부터 어머니나 할머니가 되지 않아. 처음부터 누나나 언니나 동생이 되지도 않아. 처음부터 아버지나 할아버지인 사람은 없어. 이러한 자리는 나이가 차야 되지는 않지. 이러한 자리는 어떤 삶일는지 궁금해하는 마음이 서야 하고, 이러한 자리로 가는 길에 늘 새롭게 배우며 기뻐하는 마음이어야 해. 나이는 들었으나 누나·언니·오빠답지 않은 사람이 있지. 아이는 낳았어도 어머니·아버지답지 않은 사람이 있어. 낳거나 돌본 아이가 자라 어버이로서 아이를 낳는데 할머니·할아버지답지 않은 사람이 있지. 어느 자리이건 높지도 낮지도 않아. 그저 그 자리일 뿐이야. 낫거나 나쁜 자리가 아니지. 저마다 다르게 느끼고 보고 배우면서 자라나는 자리란다. 할머니는 슬기로우면서 상냥히 살림하는 자리야. 묻기는 하지만 따지지 않는 자리야. 시키지 않으나 맡길 줄 아는 자리야. 서두르지 않지만 미루지 않는 자리이지. 아이는 할머니 곁에 있으면서 “들숲바다를 읽고 느끼며 가꾸는 눈”을 배워. 할머니는 아이 곁에 있으면서 “들숲바다랑 얘기하고 배우는 마음”을 맞아들여. 그런데 요즘은 어떨까? 요즘 아이들은 할머니 곁에서 무엇을 듣거나 보니? 요즘 할머니는 아이 곁에서 무엇을 하니? 요즈음 아이들도 할머니도 눈빛이 흐리고 말씨가 바래고 몸짓이 엉성하더구나. 슬기로운 빛을 더하면서 상냥히 나누는 넋은 사라져가네. 슬기로운 빛을 넉넉히 보고 느끼고 배우려는 넋도 사라져가는구나. 할머니다운 할머니가 사라지고, 나이들어 늙은 사람만 늘어간다면, 이 땅에서 새로 태어나서 자랄 아이도 사라지겠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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