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4.1.27.

숨은책 904


《민주열사 이한열 추모집, 그대 가는가 어딜 가는가》

 편집부 엮음

 청담문학사

 1987.7.23.



  1987년 여름은 뜨겁고 어지러웠습니다. 그즈음 ‘대학생’인 이웃 언니는 거의 보기 어려웠어요. 한마을 동무 가운데 딱 한 아이는 ‘대학생 과외’를 받았습니다. 동무네 어머님은 동무가 비싼 곁배움을 받는 동안 딴짓을 안 하도록 저를 옆에 앉혔으나, 동무는 늘 딴짓을 했어요. 저는 어머니를 도와 새뜸나름이를 하면서 본 머릿글을 떠올리면서 “전경이 최루탄 쏘면 무섭지 않아요?” 하고 묻곤 했는데, 과외하는 대학생 언니는 “난 잘 몰라.” 하면서 말을 돌리기 바빴어요. 이해 7월 5일 이한열 님이 숨을 거둡니다. 새뜸나름이는 더 받은 호외까지 얹어 집집마다 돌립니다. 사람이 고꾸라져도 우두머리는 버젓하고, 들꽃 같은 사람들은 하루하루 입에 풀바르기 버겁습니다. 새뜸을 돌리는 어머니는 “신문만 돌려. 거기 글은 읽지 말고.” 하셨어요. 《민주열사 이한열 추모집, 그대 가는가 어딜 가는가》는 “부산직할시립 구덕도서관 1987.9.10. 등록번호 51561”가 찍히지만, 빌려읽은 자국이 없습니다. “정성스럽게 책을 대하고 깨끗하게 책을 쓰자”는 글씨가 쑥스럽습니다. 누구는 왜 힘을 거머쥐려 했고, 누구는 왜 허수아비가 되어야 했고, 누구는 왜 최루탄을 쏘아야 했고, 누구는 왜 등돌리거나 모르쇠여야 했나 곱씹습니다. 태어났으나 읽히지 못 한 책은 가까스로 헌책집 책시렁에서 한 자락 살아남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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