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 숲노래 책읽기 2024.1.20.

책하루, 책과 사귀다 195 서울의 봄



  2023년에 나온 보임꽃(영화) 〈서울의 봄〉을 어느 어린배움터에서 함께 보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지요. 깜짝 놀랐습니다. 이 보임꽃은 어린이한테 안 어울려요. 적어도 열대여섯 살은 넘은 뒤에 보면 모르되, 어린이한테 너무 이릅니다. 어린이한테 보이려면 〈효자동 이발사〉가 어울립니다. 푸름이한테는 〈그때 그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비롯한 숱한 사슬을 차근차근 짚는 쪽이 나으리라 느낍니다. 슬프고 시커먼 우리나라 발자취를 어린이도 배울 노릇입니다만, ‘어린이가 아닌 어른 눈높이’로 찍은 보임꽃을 섣불리 어린이한테 보여주면, 그만 어린이는 헤매거나 어지럽거나 무섭고 섬뜩합니다. 어린이한테는 〈우주소년 아톰〉을 보여주면서 ‘총칼질(전쟁)과 따돌림(차별)과 서울나라(도시문명)’가 얼마나 헛된가를 먼저 짚어 주는 길이 훨씬 낫습니다. 차근차근 보고 새기고 익히다가 〈효자동 이발사〉를 보고, 〈그때 그 사람들〉을 볼 푸름이 나이에 이르면, 그제서야 〈서울의 봄〉을 보고 얘기해도 어울리겠지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미움씨앗’이 아닌 ‘사랑씨앗’을 보고 느끼고 배울 나이입니다. 사랑을 짓밟은 웃대가리 틈새에서 들꽃씨앗을 심은 작은이 손길부터 헤아려야 어른입니다.


그리고, 우리 집에서는 이도 저도 그도 다 안 보여줍니다. 그러면 뭘 보느냐 하면, 1971년에 나온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 같은 아름다운 보임꽃을 찾아내어 함께 보고 다시 보고 또 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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