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사층(4) 2023.11.10.쇠.



봄이 오면 곳곳에서 싹이 트고 풀이 돋아. 봄에는 밤이 쌀쌀하더라도 낮은 볕이 넉넉하지. 이른봄풀은 새봄을 기쁘게 맞이하려는 누구한테나 싱그러이 푸른빛을 나눠줘. 늦가을에 이따금 봄풀이 돋기도 해. 늦가을도 밤이면 썰렁한데, 낮에 볕이 포근하게 들 때가 있거든. 이러면 적잖은 ‘이른봄풀’은 “아! 우리가 일어나서 둘레에 푸른빛을 베풀어야겠구나!” 하고 느껴. 그러나 곧 아침저녁 모두 얼어붙는 겨울이 오는데, 늦가을에 돋은 이른봄풀은 “아하! 너무 일찍 일어났구나! 그렇지만 새봄에 다시 일어날 동무가 있어!” 하고 끝말을 남기고서 시들어. 들숲에서 살아가는 짐승과 풀벌레는 늦가을에 돋은 풀이 대단히 반갑고 고마워. 긴긴 겨울을 보내기 앞서 숨을 돌리고, 새기운을 얻거든. 죽음이 어디 있을까? 봄가을에 여름이 있고, 겨울이 있을 뿐이야. 나고 지고 흙으로 돌아가서 쉬고는 새로 깨어나. 묵은 몸을 내려놓기에 흙으로 스미면서, 이 흙은 까무잡잡한 빛에 구수한 냄새를 품어. 모름지기 ‘흙빛 = 깜빛’이고, ‘흙 = 숨결이 흐르면서 깃드는 곳’이요, ‘몸과 숨이 흐르는 길에 거치는 곳’이기도 해. 너희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4’를 ‘사(死)’로 읽으면서 ‘나쁘다(불길)’고 여기더구나. 우습지. 어떻게 그처럼 바보같을까. 잘 보렴. ‘4’라는 ‘셈(세는 말)’은 ‘나(너가 아닌 나)’로 읽을 수 있어. 너희가 스스로 보고 느끼고 알아가자면 ‘나’가 무엇인지 품을 노릇이야. 다 다른 ‘나’가 함께 살아가는 별이기에 ‘우리’를 이뤄. ‘우리’는 ‘어울림’이자 ‘너울’이고 ‘하늘(한울)’이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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