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길, 메, 내 (2023.11.3.)

― 구례 〈봉서리책방



  00시에 하루를 엽니다. 05시 30분에 택시를 불러 고흥읍으로 갑니다. 06시 20분 첫 시외버스로 여수로 건너가고, 09시부터 여수 어린배움터에서 글읽눈(문해력)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겉으로 적힌 글씨만 훑을 적에는 ‘읽기 아닌 훑기’입니다. 둘레에서는 그냥 일본말 ‘문해력’을 쓰지만,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글읽기’를 얘기해야 생각을 나눌 만하다고 느낍니다.


  북중미 텃사람을 끔찍하게 죽이면서 땅을 빼앗은 이들은 ‘북중미 텃사람 말’을 배우려 하지 않았고,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숱한 글바치(작가·교사·기자)는 어린이 말을 배우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 않으면서, 쳇바퀴에 갇힌 일본 한자말에 옮김말씨를 외우라고 닦달하는 얼거리입니다. 처음부터 어린이하고 푸름이 모두 못 알아들을 얄궂은 말을 쓰면서, 이 얄궂은 말을 억지로 외우라고 내모는 틀이 ‘문해력 교육’인 셈입니다.


  순천을 거쳐 구례로 건너갑니다. 다시 택시를 탑니다. 택시 일꾼은 책집 앞까지 모시겠다고 자꾸 말씀하지만, 저는 책집을 둘러싼 마을을 걸을 마음이기에 “내려서 걸어갈 생각입니다!” 하고 몇 판이나 따지듯 말합니다. 내린 곳에서 부러 큰길로 돌아갑니다. 천천히 둘레를 헤아리면서 걷습니다. 냇물이 흐르면서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구름이 바람 따라 흐르는 결을 살피고, 어느 멧새가 나는지 지켜보고, 저 멀리 가르는 빠른길(고속도로)을 어림합니다.


  국시모(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하고 나란히 붙은 〈봉서리책방〉 앞에 서기까지 마을집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습니다. 꽤 큰 마을이고, 담하고 미닫이하고 나무하고 지붕마다 오랜 손길이 흐릅니다.


  적잖은 글꾼이나 책꾼은 ‘작품’을 바라기에 그만 허울이나 겉멋에 사로잡힙니다. 그저 글을 쓰고 그림(회화·사진·영상)을 담으면 되어요. 살림빛을 바라볼 수 있다면 무엇이든 찍을 만하고, 바라볼 만하고, 남길 만하고, 나눌 만합니다.


  크거나 작은 일(사고)은 따로 없어요. 여러 일을 거치면서 무엇을 배우며 살아가는 하루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잘 걷고 잘 쉬면 되어요. 저는 1991년부터 돌봄터(병원)를 안 쳐다보았습니다. 갈 마음도 없고, 몸을 맡길 마음도 없습니다. 보금자리가 돌봄자리이면 되는걸요. 비록 이웃님이 쓴 글과 책을 읽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이야기를 여미어서 쓰려고 합니다.


  누구나 스스로 내는 길이요 걷는 삶이며 짓는 사랑입니다. 즐겁게 앓으면 즐겁게 낫고, 즐겁게 쓰면 즐겁게 읽습니다. 즐겁게 있기에 즐겁게 이을 수 있어요.


ㅅㄴㄹ


《야생의 푸른 불꽃 알도 레오폴드》(리베드 로비엑스키/작은 우주 옮김, 달팽이, 2004.7.21.)

#AldoLeopold #AFierceGreenFire #MarybethLorbiecki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재키 아주아 크레이머 글·신디 더비 그림/박소연 옮김, 달리, 2020.10.20.)

#TheBoyandTheGorilia #JackieAzia Kramer

《제시의 일기》(양우조·최선화 글, 김현주 엮음, 우리나비, 2019.2.28.첫/2020.2.28.2벌)

《우리 안의 친일》(조형근, 역사비평사, 2022.10.3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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