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밥벌레 2023.10.29.해.



밥을 먹으니 ‘밥·보’이고, ‘밥·벌레’야. 다만, 밥을 먹기만 할 뿐이니 ‘밥보·밥벌레(밥버러지)’라 하겠지. 너희는 사람끼리 ‘밥사람’이라 하지 않아. 그렇지만 ‘이팝나무’라 하고, ‘밥꽃’이나 ‘밥동무’라 할 적에는 따뜻하거나 아늑하거나 즐거운 기운이 흐른다는 마음을 나타내지. 그러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렴. ‘바보(밥보)’라는 낱말은 놀리거나 깔보거나 얕보는 마음이 깃들지 않아. 애벌레는 아기벌레이잖니? 사람이 낳은 아기는 엄마젖을 물며 무럭무럭 커. 아이로 뛰놀 적에도 으레 ‘밥아이’란다. 아이는 ‘밥짓는 아이’가 아닌 ‘밥 실컷 먹는 아이’야. ‘아기벌레·아이벌레’인 ‘애벌레’도 같아. 눈코입은 없지만, 무럭무럭 크려고 날마다 잎을 실컷 갉아. 나무도 풀도 ‘아기(애벌레)’한테 기꺼이 뭇잎을 내어주고 새잎을 꾸준히 내놓지. 풀과 나무는, 엄마아빠가 아기를 오직 사랑으로 돌보듯 애벌레를 푸르게 돌봐. 이윽고 아기는 혼자 서고 걷고 달려. 활짝 웃고 말을 터뜨리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온집과 온마을을 사랑으로 흠뻑 적시지. 애벌레는 입에서 실 한 오라기를 내놓고서 고치를 틀어 깊이 잠든단다. 사람 아이는 어린이에 푸름이를 거치며 생각이 깊고 철이 들어. 애벌레는 고치에서 깊이 자고서 드디어 깨어나는데, 날개에 더듬이에 눈코귀 모두 생겨. ‘밥아이’는 ‘어른’이 된단다. ‘밥벌레’인 애벌레는 나비가 돼. 자, ‘바보(밥보)’는 어떤 빛이 될까? 너희는 스스로 어떤 숨결로 눈뜨고 깨어나겠니?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