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숙제를 2023.10.30.달.



지난날 배움터(학교)에서는 무척 오랫동안 어린이·푸름이한테 짐을 떠넘기고 때리고 누르고 가두고 길들였어. 지난날에는 다들 ‘숙제 = 짐’이었단다. 그런데, 짊어지고 맞고 눌리고 갇히고 길든 쳇바퀴에서 허덕이던 아이들이 차츰 자라 어른으로 서면서 “더는 안 되겠어! 우리는 새로 낳아 돌볼 아이한테 이 짐을 이어주지 않겠어!” 하고 꿈을 그렸단다. 오래도록 배움터에는 짐도 주먹질·매질도 잦았지만, 어느새 조금씩 잦아들었어. 이윽고 요사이는 ‘숙제 = 익힘’으로 천천히 바뀌어 간단다. 이제 아이를 함부로 때리거나 괴롭히는 늙은사람이 확 줄었어. 그래도 아직 어린이·푸름이가 기지개를 활짝 켜지는 못 하지. 자, 생각을 해보자. ‘좋거나 싫다’는 금이 아닌, 스스로 보고 듣고 겪고 배우고 받아들이려면, 무엇이든 두고두고 새기면서 차분히 돌아볼 노릇이야. ‘익힘’은 사람이 밥을 익히거나 해가 열매를 익히듯, 누구나 넉넉하며 즐겁게 맞이할 수 있도록 알차게 돌보아낸다는 뜻이야. 밥을 익히거나 열매가 익거나 ‘따뜻볕’이라는 기운을 고루 품어. ‘설익은’ 밥은 못 먹겠지? ‘덜익은’ 열매도 못 먹을 테고. ‘무르익을’ 때까지 느긋이 지켜보면서 포근하게 온사랑을 담아서 두고두고 가꾸기에 ‘익힘’이요, 숙제란 바로 이 ‘익힘’으로 나아갈 노릇이란다. 숙제를 내는 사람은 먼저 새로 익히면서 내기에 새삼스레 배워. 숙제를 받는 사람은 새롭게 보고 맞아들일 이야기를 그리면서 설렌다면 새록새록 눈을 빛내면서 자라나지. ‘짐’이 아닌 ‘익힘빛’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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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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