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자의 이름은 창비시선 269
최영숙 지음 / 창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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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3.11.5.

노래책시렁 278


《모든 여자의 이름은》

 최영숙

 창비

 2006.10.29.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아픈 몸을 모릅니다. 배곯지 않은 사람은 배곯는 하루를 모릅니다. 앓아눕지 않은 사람은 앓아눕는 나날을 모릅니다. 가난해서 돈을 빌리는 살림이 아닌 사람은 가난살림을 모릅니다. 눈힘(시력)이 좋은 사람은 장님이 무엇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이름난 사람은 이름 안 난 사람을 모릅니다. 모르니까 모르고, 어깨동무를 하니까 압니다. 그리고 어린이 곁에 서지 않는 사람은 어린이하고 나누면서 온누리를 사랑으로 바꿀 말길하고 글길을 모릅니다. 《모든 여자의 이름은》을 쟁이고서 몇 해를 묵혔습니다. 노래님은 일찌감치 흙으로 돌아갔고, 이이가 남길 노래는 더는 없습니다. 한 꼭지를 읽고서 한 달을 보냈고, 다음 꼭지를 읽고서 두 달을 흘렸고, 한 꼭지를 더 읽고서 몇 달을 슥 지나갔습니다. 한때 권정생 님 글도 처음부터 아주 천천히 되읽은 적 있습니다. 이오덕 님 글은 진작에 모두 서른∼일흔 벌씩 되읽었지만, 천천히 곱새기며 새록새록 읽기도 했습니다. 이미 떠난 님이 남긴 글이기에 더 아름답지 않아요. 살아서나 죽어서나 왜 되읽을 만하냐면, 스스로 노래하는 살림빛을 영글어서 얹거든요. 다리를 다쳐 절뚝이는 사람을 보고도 걸음을 안 늦추고 나란히 안 걷는다면, 그이는 이웃이나 벗이 아니겠지요.


ㅅㄴㄹ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세살 난 딸아이는 이렇게 말하지 / “누구 강아지?” “엄마 강아지” / “누구 딸?” “엄마 딸” / “누구 닮았지?” “엄마 닳았지” (잠든 아이의 배꼽을 보면/50쪽)


입구는 있으나 출구는 없다 여기는 영혼이 몸을 가두는 곳, 낮과 밤도 없다 까마귀떼처럼 24시간 두 눈을 쪼아대는 형광 불빛 아래 몸은 잠들지 못한다 무덤 속이 이렇게 환하다면 사실은 아마 마음놓고 썩지도 못할 것이다 (응급실의 밤/64쪽)


+


집안의 슬픈 소사(小史)

→ 집안 슬픈 작은길

9쪽


이상한 서기(瑞氣)가 있다고

→ 다른 빛줄기가 있다고

→ 유난한 빛살이 있다고

12쪽


주일날 아이를 데리고

→ 해날 아이를 데리고

→ 쉬는날 아이를 데리고

19쪽


마음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여기서 본다

→ 마음구슬을 여기서 본다

→ 참된 마음구슬을 여기서 본다

35쪽


이제는 육탈해 거기 아니 계시겠지

→ 이제는 놓고 거기 아니 계시겠지

→ 이제는 벗고 거기 아니 계시겠지

41쪽


점심에는 식사 저녁에는 호프를 파는

→ 낮에는 밥 저녁에는 보리술을 파는

42쪽


어쩐지 말이 없는 그녀는

→ 어쩐지 말이 없는 그이는

→ 어쩐지 말이 없는 그분은

47쪽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 이제 막 말을 배우는

50쪽


할머니의 나들이는 흰 고무신을 깨끗이 닦아 댓돌에 엎어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 할머니 나들이는 흰 고무신부터 깨끗이 닦아 댓돌에 엎어놓는다

→ 할머니는 흰 고무신부터 깨끗이 닦아 댓돌에 엎어놓으며 나들이를 연다

76쪽


불꽃의 시절이었지

→ 불꽃같은 날이었지

→ 불꽃같았지

→ 불꽃나날이었지

98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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