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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에 쓴 창업일기 - 남들은 하던 일도 접는다는 나이
이동림 지음 / 산아래詩 / 2023년 8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 책숲마실 2023.11.5.
책집지기를 읽다
21 《일흔에 쓴 창업일기》와 대구 〈산아래詩〉
어떤 분은 요새 ‘소설’이 안 읽힌다고 말씀하지만, 새뜸(신문)에서 소설책을 안 다루는 일이란 없습니다. 갈수록 ‘철학책·역사책·사회사상책’이 안 읽힌다고 여기는 분도 있으나, 이러한 책은 꾸준히 나옵니다. ‘문학비평’이 몇쯤 팔리는지 모르겠다고도 말하지만, 이럭저럭 지며리 나와요.
우리나라에서 ‘시’를 쓰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그러나 ‘시집’은 참 안 읽힌다고도 하는데, 다르게 보면 몇몇 펴냄터에서 나오는 ‘시집’은 안 팔리지 않습니다. 한켠으로 치우친 시집은 불티나게 팔리고 읽히며, 이런 시집에서 시를 쓰는 결대로 시쓰기를 흉내내는 분이 대단히 많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 팔리는 갈래는 이쪽도 저쪽도 그쪽도 아니에요. ‘사진책’이 가장 안 팔립니다. 게다가 이제 사진책은 아예 안 나온다고 여길 만합니다. 다들 손전화를 많이 쓰면서 사진책이 팔릴 일이 없지는 않아요. 손전화를 안 쓰던 무렵에도 사진책은 띄엄띄엄 나왔고, 사진책을 새뜸(신문)에서 새책이라며 알리는 일조차 없다시피 했습니다.
문학비평이 안 읽힌다고 푸념을 하지만, 사진비평을 읽는 사람은 그야말로 없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면 사진비평을 왜 안 읽을까요? 사진책을 안 읽으니 사진비평도 안 읽을 만하지만, 우리나라 사진비평은 ‘읽은 눈으로 삶을 헤아리는 글’이 아니라, ‘서양 예술이론’을 일본 한자말하고 옮김말씨(번역체)로 뒤섞고 꾸미고 멋부린 허울스러운 짜집기이거든요.
대구에 마을책집 〈산아래詩〉가 태어났습니다. 대구 한켠에 나즈막이 숲을 이루는 삶터에 깃듭니다. 푸르게 흐르는 멧바람을 맞이하면서 노랫가락을 나누는 이음터라고 할 만합니다. 노래(시)를 쓰는 사람들이 아로새긴 노래책(시집)을 이웃한테 잇는 자리입니다.
우리말은 먼 옛날부터 ‘노래’입니다. 일하는 어른은 일노래요, 놀이하는 아이는 놀이노래입니다. ‘말’이란 마음을 담은 소리입니다. 말을 담아서 흥얼흥얼한다면 노래요, 따로 말이 아닌 소리를 얹으면 가락입니다. 말하고 소리가 어우러지도록 부르면 노랫가락이나 노랫소리입니다.
노래하기에 놀이합니다. 놀이하기에 노래합니다. ‘놀다’는 ‘손놀림·발놀림·몸놀림’처럼, 우리 몸이 새롭게 어떤 삶을 짓는 살림으로 나아가려는 결을 나타내는 낱말입니다. 아기가 목을 가누려고 놀고, 아기가 몸을 뒤집으려고 놀지요. 이 모습에서 태어난 말이 ‘놀이’입니다. 아기가 내는 소리는 모든 어버이 마음을 사랑으로 녹여요. 모든 사람이 아기한테서 배우는 가락인 노래입니다. 그리고 사람 곁에서 보금자리를 짓거나 둥지를 트는 새가 노래를 베풀어요. 새노래입니다. 새가 들려주는 노래는 늘 ‘새롭’습니다. 숲과 마을 ‘사이’에서, 또 하늘과 땅 ‘사이’에서 모든 숨빛을 노래로 잇기에 ‘새’라는 이름입니다.
이뿐 아니라, 개구리하고 풀벌레가 마을로 깃들고 시골집으로 스며서 노래합니다. 매미도 나무에 매달려 노래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모든 노래는 모름지기 숲에서 비롯했습니다. 사랑을 담은 아름다운 노래란 ‘숲노래’입니다. 푸른별이 이름 그대로 푸르게 살아나는 바탕인 노래는 ‘숲노래·숲바람’이에요.
‘새하늬마높’이라는 이름에서 엿보고, ‘높녘’은 ‘높다’를 가리키듯, ‘노래’는 마음을 높이 띄우고 북돋웁니다. 아침저녁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처럼, 언제나 춤추는 기운찬 물결인 놀(너울)처럼, ‘노’라는 밑동은 우리말 곳곳에 스미면서 ‘노느메기(노느다)’를 지나고 ‘나누다’를 돌고 ‘넉넉하다·너른’을 스치기도 합니다.
우리 발자취를 더듬으면 ‘시’라는 이름인 글을 쓴 지는 고작 온해(100년)입니다. 중국 섬기기(사대주의)를 모르던 시골지기(농민)는 그저 삶말로 삶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한테 삶과 말을 물려주었어요. 이 노래를 누구나 부르고 나누기를 바라요. ‘시’가 아닌 ‘노래’를 부르면서, 넉넉하게, 노을빛으로, 너울결로, 너른숨으로, 놀이하는 일손으로 즐겁게 마주하면, 우리는 서로서로 숲을 품는 바람처럼, 새를 이웃하고 풀벌레랑 개구리를 동무하는 ‘사이’에서 사람으로 사랑을 하며 살아가겠지요.
《일흔에 쓴 창업일기》(이동림, 산아래詩, 2023.8.1.)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이런 냉혹한 현실을 기꺼이 참고 견디며, 거뜬히 극복하기 위해서 ‘일흔’이 다시 ‘호기심과 열정의 나이’가 되도록 눈빛을 초롱초롱 밝힐 것이다. (17쪽)
앞으로 내가 이 나이에 책방으로 성공했다는 소문과 함께, 요즘 한 집 건너 한 집 생기는 카페나 동네마다 골목골목 들어서는 편의점보다 크고 작은 책방들이 우리 주위 여기저기에 자꾸만 늘어나면 좋겠다. (39쪽)
이 책방은 미리 사고 싶은 시집 콕 찍어 와서 “그 시집 있어요?”라고 묻는 책방이 아니다. 들어와서 둘러보다가 “이 시집 좋네요.”라며 한 권 뽑아 들고 돌아가는 책방. 그런, 시집 전문 책방이다. (82쪽)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이 책방은 개업일이나 개업 행사가 따로 없다. 내가 ‘이제 그럭저럭 준비가 다 됐다’ 싶으면 그다음 날이 바로 개업일이다.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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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성이 있거나 교양서적은 결코 아닙니다
→ 아름답거나 배우는 책은 아닙니다
→ 달콤하거나 익힐 만한 책은 아닙니다
2쪽
자기도취에 헷갈리고 있는 건 아닌지
→ 내멋대로에 헷갈리지는 않은지
→ 제멋에 헷갈리지는 않은지
→ 겉멋에 헷갈리지는 않은지
2쪽
아무리 백세시대라 하지만 무리라는 게다
→ 아무리 온살림날이라지만 어렵단다
→ 아무리 온살림길이라지만 힘들단다
15쪽
이런 우려들은 나도 이미 다 알고 있다
→ 이런 걱정은 나도 이미 다 안다
→ 이런 근심은 나도 이미 다 안다
15쪽
어찌 보면 순리였다
→ 어찌 보면 마땅하다
→ 어찌 보면 맞다
30쪽
생명불식(生命不息) 전시회가 최근 서울에서 있었다. 生命不息.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몫을 다해야 한다
→ 삶빛 보임마루를 얼마 앞서 서울에서 했다. 삶빛. 산다면 산 몫을 다해야 한다
→ 살림꽃 보임터를 요사이 서울에서 했다. 살림꽃. 살아간다면 몫을 다해야 한다
32쪽
성공했다고 소문난 동종업체를 여기저기 수소문해가며 찾아다닌다고 한다
→ 잘된다고 이름난 이웃가게를 여기저기 찾아다닌다고 한다
→ 잘한다고 알려진 옆가게를 여기저기 찾아다닌다고 한다
35쪽
온종일 독서삼매에 빠져 사는 친구도 있다
→ 온하루 책읽기에 빠져 사는 벗도 있다
→ 온통 책하루인 동무도 있다
38쪽
이 불경기에 초기 비용이 많으면 안 되니
→ 이 돈고비에 밑천이 많이 들면 안 되니
→ 이 고비에 밑돈이 많이 들면 안 되니
46쪽
책장 등 집기만 적당하게 들여놓으면
→ 책꽂이나 세간만 알맞게 들여놓으면
→ 책칸이나 살림만 잘 들여놓으면
51쪽
반색하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동의를 보였다
→ 반색하며 속에서 우러나오듯 끄덕였다
65쪽
이웃 가게에 부담되지 않는 업종이라서 마음이 한결 편하다
→ 이웃 가게가 꺼리지 않는 일이라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
→ 이웃 가게와 부딪히지 않아서 마음이 한결 느긋하다
76쪽
시집 전람회장이라고 보는 게 맞다
→ 노래책 보임터라고 보아야 맞다
→ 노래책잔치라고 보아야 맞다
82쪽
수익에 연연치 말라고 다독인다
→ 돈에 매이지 말라고 다독인다
→ 벌이에 끌리지 말라고 다독인다
137쪽
오픈을 앞두고 그동안 판매된 시집에 대해 정산을 한다
→ 첫날을 앞두고 그동안 판 노래책을 돌아본다
→ 첫단추를 앞두고 그동안 판 노래책을 셈한다
170쪽
개업일이나 개업 행사가 따로 없다
→ 첫날이나 첫잔치가 따로 없다
133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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