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볕살에는 2023.10.20.쇠.
볕이 있기에 누에가 고치를 틀고서 실을 베풀어. 누에실(비단)이란, 누에가 온몸으로 실을 뱉어서 고치를 틀기까지 머금은 ‘뽕잎’이야. 뽕잎은 뭘까? 뽕나무가 볕바른 터에서 해와 바람과 비를 흙에 뿌리내리고서 받아들인 모든 푸른 기운이지. ‘해바람비’는 ‘흙’이랑 ‘풀벌레노래’를 머금고서 푸른잎으로 돋아나. 푸른잎을 누에 애벌레가 갉는 동안, 누에 온몸은 풀빛이 넘치고 ‘햇빛·바람빛·비빛·흙빛·풀벌레노래빛’이 고루 스며. 누에실(비단)로 짠 옷에는 바로 이 모든 기운이 서리지. ‘플라스틱으로 뽑은 실’로 짠 옷에는 무엇이 서릴까? ‘폴리에스테르 옷’에 해기운이나 바람기운이나 비기운이란 하나도 없겠지. 흙기운이나 풀벌레노래기운도 없을 테고. 오늘날 이 푸른별을 보면, ‘누에실옷’이나 ‘모시옷’이나 ‘솜실옷’이나 ‘삼베옷’을 두르는 사람이 드물구나. 다들 몸에 무엇을 걸치는 셈일까? 옷으로 몸을 돌보니? 오히려 옷으로 몸을 옥죄거나 억누르지 않니? 볕살에는 살림기운이 넘실거려. 너는 해바라기를 하며 볕살을 듬뿍 받을 적에 어쩐지 느긋하고 배부르다가 졸립게 마련이야. 볕살을 가득 받으면 왜 졸릴까? 너희 몸을 살찌워 일으킬 기운을 잔뜩 ‘먹었’으니 한동안 쉬고 싶어서 졸립단다. 볕살을 쬐며 낮잠이 들면, 너희 몸에 깃든 부스러기나 찌꺼기가 사르르 녹아. 그저 볕살로 배부르고, 그저 볕살로 몸을 튼튼히 가꾸지. 그러나 무엇이든 너무 먹으면 배앓이를 하니까, 볕살도 알맞게 누리고서 쉬엄쉬엄 하루를 살아야겠지. 너희는 ‘먹기’만 하려고 살아가는 몸이 아니니까, ‘볕살을 머금은 몸’으로 어떤 일이나 놀이를 즐겁고 아름답게 그리고 지으려는지 생각하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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