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포도알 2023.10.21.흙.
포도알이 굵으면 알아보니? 알아보기에 손이 가니? 까마중알이 익으면 알아보니? 알아보기에 손이 가니? 줄기가 굵고 가지가 굵으면 포도알도 굵어. 굵게 오르면서 해바람비를 넉넉히 품는 포도나무는 사람뿐 아니라, 곰이며 숲짐승이며 새 모두한테 이바지해. 다들 조금씩 나누던 포도알이야. 그런데 어느새 숲에서 포도나무가 자취를 감추는구나. 누구나 알맞게 나누던 열매인데, 이제는 사람들이 혼자 다 누리려고 해. 게다가 사람들은 ‘사람과 숲짐승과 새’가 나란히 살던 들숲메에 금을 딱딱 긋고는, 땅을 돈으로 사고팔아. 개구리도 뱀도 사슴도 지렁이도 개미도 새도 여우도 범도 ‘누구 혼자 차지하는 땅’이 아닌, ‘누구나 실컷 누리되 누구나 고르게 살아온 땅’인데, 사람이 아니면 다 쫓아내고 죽이네. 보렴. 찻길을 늘리고 아파트를 올리려고 멀쩡한 숲을 밀고 멧골을 깎잖아. 나무한테는 묻지 않고, 쥐며느리하고 송사리한테도 묻지 않아. 푸른별이 아닌, 돈 하나만 쳐다보느라 마음이 메마르고 죽어가는 사람이야.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동차도 아무 데나 세우지. 이 큰 쇳덩이를 몰면 다 밀어붙여도 된다고 여기거든. 새는 다 죽어도 될까? 동물원에 가두고서 먹이만 주면 될까? 이제 사람들은 까마중을 안 찾으니, 숲짐승은 까마중만 먹으면 될까? 그런데 이 까마중마저 잡초로 여겨 다 뽑아버리지 않니?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