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3.10.20. 시린 무릎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새벽에 택시를 불러서 고흥읍에 갔고, 06:20 첫 시외버스로 여수로 건너갔습니다. 아침 9시에 여수 성산초등학교에서 글읽눈(문해력 증진 수업)을 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서 다시 택시를 타기까지 30분 즈음 걸었습니다. 여수 이마트에 가 보았습니다. 이마트에 가면 ‘무늬도 글씨도 없고, 폴리를 안 섞은 옷’을 팝니다. 누리가게에서도 이런 옷을 찾을 수 있지만 꽤 어려워요. 왜 옷에 설익은 무늬나 글씨를 새길까요? 왜 옷에 어떤 그림(캐릭터)을 집어넣고서 값을 몇 곱씩 부풀려야 할까요?
가만 보면, ‘캐릭터나 상표를 박고 비싸게 파는 옷’은 ‘베스트셀러·스테디셀러’하고 닮습니다. 이름을 앞세우는 옷이나 책은 비쌉니다만 허술하게 마련입니다. 이름을 뒤세우고서 알맹이나 줄거리를 드러내는 옷이나 책은 안 비싸면서 알차게 마련입니다.
여수에서 고흥으로 건너오는 시외버스는 순천에서 손님을 잔뜩 태웁니다. 여수에서 떠난 버스는 널널했으나, 어느새 비좁습니다. 독일에서 온 마실손이 제 옆에 앉습니다. “This is free?” “Yes.” 독일사람도 ‘콩글리시’ 비슷한 ‘도글리시’를 쓰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긴, 영어를 안 쓰는 나라라면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요?
고흥에는 14시 57분에 내립니다. 14시 40분에 마을로 들어가는 시골버스가 있는데 17분 늦습니다. 이다음 시골버스는 16시 40분입니다. 택시를 타고 다리를 쉴까 하다가, 15시 30분에 옆마을을 지나가는 시골버스를 탑니다. 옆마을에 내려서 들길을 거닐다가 아프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시골에 웬 울음소리인가 하고 갸우뚱하며 걷다가 길바닥에 널브러진 개를 한 마리 봅니다.
곱상하게 생겼고, 목띠가 있고, 털도 반듯하게 고른, 아마 우리 마을이나 이웃 어느 마을에서 기르는 개일 텐데, 목줄은 없습니다. 적잖은 시골집은 개한테 목줄을 안 해서 낮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짖기도 합니다. 이 아이도 낮마실을 다닌 듯싶은데 그만 길에서 치였군요.
이웃 봉서마을에서 들길을 걸어서 우리 마을 쪽으로 올 적에 제 곁을 스친 쇳덩이(자동차)는 둘입니다. 하나는 사납게 빨리, 하나는 어쩐지 느리게 달리더군요. 아, 그렇구나! 아파서 끙끙끙 울부짖는 개 입에서 나오는 시뻘건 피가 길바닥에 퍼지는 결을 보니, 치인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누가 치고 갔는지 알겠더군요.
길에서 치여죽는 개한테 해줄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이야, 많이 아프겠구나. 너무 아프고 슬프고 어이없어서 외마디소리만 겨우 내는구나. 이제 네 몸을 내려놓으렴. 이다음에는 새가 되어 하늘을 날기를 바라. 또는 너를 치고 간 바보스러운 사람이 아닌, 숲빛을 품으면서 어질게 꿈을 그리는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렴.”
우리나라 길바닥에서 하루에 치여죽는 들짐승이나 집짐승이나 마을짐승이 몇이나 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제대로 ‘통계’가 없거든요. 다만, 하루에 1만에 이르는 숨결이 쇳덩이에 치여죽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사람을 뺀 이웃이 날마다 1만씩 길에서 쇳덩이한테 치여서 죽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다루는 글이나 그림은 거의 못 봅니다. 다들 서울(도시)에서 살잖아요? 다들 아주 바쁘잖아요? 다들 너무 바빠서, 할 일도 많아서, 돈도 많이 벌어야 해서, 또 스스로 잿집(아파트)에 갇힌 채 안 걸어다니니까, 길죽음을 볼 일도 없겠지요. 이리하여 다들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쓰는 길하고도 한참 멀어요.
집에 닿아 느즈막이 오늘 첫 끼니를 먹습니다. 발을 씻고, 빨래를 담가 놓자니 기운이 쪽 빠집니다. 드러눕습니다. 밤새 무릎을 앓습니다. 무릎이 시큰합니다. 치여죽은 개는 온몸이 다 아팠겠지요.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