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손끝 발끝 결려서 : 밤 한 시에 일어나 하루를 연다. 새벽 여섯 시에 이웃마을로 걸어가서 첫 시골버스를 타야 하기에, 이때까지 여러모로 집안일과 글일을 추스른다. 새벽 여섯 시 사십오 분에 들어오는 시골버스를 탄다. 꾸벅꾸벅 졸면서도 노래꽃(시)을 한 자락 쓴다. 고흥읍에 닿는다. 여수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선 채로 졸지만 눈썹살과 눈두덩과 뒷머리와 뒷목을 천천히 주무르면서 하루쓰기(일기)를 더 한다. 이제 시외버스가 들어오는 아침 일곱 시 이십 분. 자리에 앉자마자 까무룩 곯아떨어진다. 십오 분쯤 죽은 듯이 쓰러졌다가 스르르 눈을 뜬다. 여수남초등학교 삼학년 어린이한테 들려줄 이야기는 며칠 앞서부터 다 추슬렀으나, 새롭게 돌아본다. 어린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손질해 놓는다. 아침 열 시 오십 분부터 ‘긁읽눈(문해력 증진 수업)’을 편다. 이미 한 시간쯤 앞서 어린배움터에 닿아서 노래꽃을 한 꼭지 더 썼고, 커피를 마시고 물을 마시고 손낯을 씻으면서 잠을 쫓는다. 열두 시 이십 분에 오늘 이야기꽃(강의)을 마친다. 여러 ‘글살림 등짐’을 짊어지고서 여수 시내를 걷는다. 이튿날에는 죽림초등학교 어린이하고 이야기꽃을 편다. 이때에 쓸 종이를 마련하려고 글붓집(문방구)을 어림하지만, 요새는 배움터 앞에 글붓집이 없다. 요새는 글붓집이 아닌 ‘다이소’에 가야 붓도 종이도 살 수 있다. 한참 걸었다. 여수 시내버스를 탔다. 여수 마을책집 한 곳을 찾아가려고 오르막 골목을 한참 걸었는데, 책집은 사라지고 찻집(카페)만 덩그러니 있다. 아, 헛걸음이로구나. 터덜터덜 걷자니 동동다리 곁에 어린이놀이터가 있네. 걸상에 주저앉아 다리를 쉰다. 땀에 젖은 웃옷을 갈아입는다. 이제 열네 시를 조금 넘는다. 길손집은 열다섯 시부터 연다는데 어찌할까 망설이면서 해바라기를 하다가 그냥 들어가 보기로 한다. 한 시간 일찍 들어가는 김에 1만 원을 더 치른다. 발을 씻고 고무신을 헹구고, 땀에 젖은 옷을 빨아서 옷걸이에 꿰고 나니 기운이 다한다. 손끝 발끝 머리끝이 온통 결린다. 쓰러진다. 쓰러져서 세 시간쯤 그대로 꿈나라로 날아간다. 2023.10.1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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