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바가지 : 찰칵이(사진기)를 새로 장만해야 할 적에 새것으로 들이기도 하지만, 헌것으로 갖추기도 한다. 새것으로 살 돈이 모자라면 헌것을 쓰고, 바깥일을 보다가 갑자기 찰칵이나 눈(렌즈)이 멎으면 부랴부랴 ‘헌것이라도 있으면 고맙다’고 여기면서 산다. 1998년부터 찰칵이를 장만하고 고치면서 돌아보노라면, ‘멀쩡한 헌것’을 사고파는 분이 틀림없이 있으나, ‘안 멀쩡한데 감추는 헌것’을 사고파는 분이 수두룩하다. 멀쩡한 것을 제값을 받으면 안 아쉽다. 안 멀쩡한 것에 덤터기를 씌우는 바가지를 하니 얄궂다. 바가지랑 ‘안 바가지’는 어떻게 알아보는가? 척 보아도 싸하게 느낀다. 싸하게 느끼지만 ‘이곳에서 찰칵이를 바로 장만해야 바깥일을 볼 수 있는걸’ 하는 마음에 ‘알면서 덤터기를 쓴’다. 바가지를 씌우는 가게일꾼은 마치 이모저모 챙겨 주는 듯 움직인다. 바가지를 안 씌우는 가게일꾼은 이녁 일삯만큼만 길미를 남기고서 사고판다. 가게일꾼은 ‘바가지’가 아닌 ‘장사하는 일’을 할 노릇이다만, 장사하는 일보다 바가지로 기우는 가게일꾼이 흔하다. ‘삶·살림·사랑을 담아내는 일’을 바라보면서 즐거이 여미는 글꾼이 드물고, ‘치레·꾸밈·덧바름·허울·겉멋’에 사로잡히는 글꾼이 흔한 이 나라하고 닮았다고 느낀다. 장사판만 바가지일 수 없다. 글판도 바가지요, 나라판(정치·사회)도 배움판도 바가지이다. 2023.9.17.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