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캐논 100디 화이트 : 열 살 무렵인 1984년에 아버지 찰칵이로 구름을 찍으며 논 적이 있다. 아버지가 안 쓰는 ‘낡은 전자동 값싼 찰칵이’를 마을 전파상에서 고친 다음에 마실날(소풍·수학여행) 챙겨서 동무를 찍어 주기도 했다. 빛꽃을 담는 길은 1998년 봄에 비로소 배웠고, 이해 여름부터 ‘헌책집’이라는 곳을 스스로 담아서 둘레에 알리고 나누자고 생각하며 살았다. 가난살림으로 구를 무렵에는 새것을 살 엄두를 못 내면서 헌것을 사서 쓰다가 고치고 또 고치다가 숨을 거두면 비로소 ‘새 헌것’을 장만했다. 필름을 쟁여 찍던 무렵이다. 2006년으로 접어들어 이제는 필름으로만 찍기 어려운 줄 느껴 디지털로 건너가는데, 디지털은 헌것으로 사다가는 바가지를 쓰기 좋더라. 여러 디지털을 쓰다가 ‘캐논 100디 화이트’가 ‘35밀리 필름찰칵이 빛결’하고 아주 닮은 줄 느꼈다. ‘니콘 기계식 찰칵이 + 일포드 델타400 흑백필름’으로 얻은 빛결을 ‘캐논 100디 화이트’로 느낀 뒤, 이 찰칵이가 마르고 닳도록 곁에 두는데, 이제 더는 새것이 안 나오는 터라 헌것만 이래저래 찾아서 쓴다. “작품사진을 하려면 적어도 ‘마크 투’나 ‘마크 쓰리’로 가야 하지 않나?” 하고 묻는 이웃님이 많다. 그런데 ‘캐논 100디 화이트’는 ‘헌책집’이라는 책터를 담아내기에 가장 어울린다고 느낀다. 더 높은(고사양) 찰칵이를 손에 쥐기에 더 훌륭하거나 빼어난 빛꽃(사진)을 얻지는 않는다. 자리에 맞게 다루는 찰칵이가 있다. 사람이 살림하는 사랑을 바라보고 풀어내는 숨결은 ‘더 좋은’도 ‘더 뛰어난’도 아닌 그저 ‘푸르게 사랑’일 뿐이다. 오래도록 ‘일포드 델타400 흑백필름’을 ‘1600 증감’으로 찍어 왔는데, 이 필름을 우리나라에서 더는 살 수 없는 날까지 마지막 필름 한 통을 아끼면서 찍고 감았다. “왜 굳이?”라고 물어야 할까? 2억쯤 값이 나가는 두바퀴(자전거)여야 가장 잘 달릴까? 5000만 원쯤 값을 하는 두바퀴가 멧길을 가장 잘 탈까? 200만 원쯤 값이 나가는 두바퀴를 착착 접어야 가장 수월할까? ‘틀(기계)’을 본다면, 줄을 세워서 첫째부터 꼴찌까지 늘어놓을 수 있겠지. 그러나 ‘삶’이며 ‘글’을 본다면, 어떤 줄도 세울 수 없고, 어떤 높낮이도 따질 수 없다. 2023.9.15.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