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나라와 나와 너 (2023.4.22.)

― 서울 〈다시서점〉



  요새는 어린이집부터 아이들을 일찌감치 가르치려 들면서 ‘위인’을 알려주고, ‘존경할 인물 소개’까지 합니다. 그림숲(미술관)·박물관(살림숲)에 아이들을 데려가서 일찍부터 ‘입시공부’에 이바지할 밑동을 닦으려 하더군요. 어른이란 이름인 자리에서 아이들한테 으레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하고 묻는데, 저는 어릴 적에 으레 ‘어머니’라고 대꾸했습니다. 어린배움터(국민학교) 여섯 해를 ‘어머니를 높일 만하다’고 밝혔습니다. 푸른배움터(중고등학교)로 옮긴 뒤에는 ‘높이 여길 사람’으로 ‘헌책집지기’를 더 꼽았습니다. ‘그냥 책집’이 아닌 ‘헌책집’으로 콕 집었어요. ‘그냥 책집’은 ‘팔 책’을 손쉽게 시키고, ‘안 팔리는 책’은 손쉽게 물립니다. ‘헌책집’은 ‘팔 책’을 먼지더미를 헤치면서 캐내고서 하나하나 손질하고 말린 뒤에, ‘안 팔리는 책’을 내내 끌어안다가 눈물바람으로 외려 돈을 더 치러서 내놓아야 합니다. ‘그냥 책집’은 이미 둘레에 알려진 책을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맞춰 주면 됩니다만, ‘헌책집’은 둘레에 잊히거나 안 알려진 책을 새롭게 캐내고 알아내고 찾아내어 겨우 한 자락을 갖춥니다.


  누구나 스스로 삶을 지으면 저마다 하루가 별빛으로 나아갑니다. 안 높은(존경)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높고, 누구나 너울거리고, 누구나 하늘하고 바다(바닥) 사이를 가만히 춤추듯 오르내립니다. 낮이 있으니 밤이 있고, 해가 뜨니 별이 돋습니다. 어머니 곁에 아버지가 어질게 있으니 보금자리를 일구는 어버이로 거듭나고, 어른 두 사람이 온삶으로 보여주는 사랑을 아이들이 물려받아 새롭게 가꾸기에 온누리가 아름다울 수 있어요. 이 얼거리가 틀어지면 온누리는 그저 싸움판입니다.


  서울 하늬녘 〈다시서점〉을 찾아갑니다. 어느 모로는 ‘서쪽 끝’이라 여기지만, 푸른별에는 끝이 딱히 없이 모든 곳이 ‘가운’입니다. 가운데요, 가운터요, 가운숲이요, 가운자리요, 한복판이에요.


  나라지기(대통령)를 맡는 이가 책을 안 읽는다고들 합니다만, 여느 벼슬꾼(공무원)은 얼마나 읽을까요? 여느 길잡이(교사)는 얼마나 읽을까요? 겨우 읽는 책은 품이나 갈래가 얼마나 넓거나 깊을까요? 뻔한 책조차 안 읽는다지만, 뻔한 책만 똑같이 읽는 나라가 오히려 더 외곬이기 쉬워요. 나라가 무너져도 되면, 책집이 무너져도 되겠지요. 나라가 사라져도 되면, 숲이 사라져도 될 테고요. 나라가 죽어도 되면, 말글이 죽어도 되겠고요.


  ‘나’를 잊는 ‘나라’는 없어도 됩니다. ‘나’를 스스로 사랑할 때라야 ‘너’를 알아보며 서로 빛나요. 저마다 날개를 달면서 함께 너머로 가기를 바라요.


ㅅㄴㄹ


《영등포 시장한 요리》(고미랑, 플랜포히어, 2020.11.첫./2021.11.15.2벌)

《문화재 탐방》(김민혜, 1994.8.첫/2022.9.22.고침)

《어느 바보의 일생》(아쿠타가와 류노스케/박성민 옮김, 시와서, 2021.8.7.)

《강서뭉클 백과도감》(강서는뭉클뭉클, 강서구, 2023.)

《안부, 21명의 문학 작가가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김경현 엮음, 다시서점, 2021.11.9.)

《엄마방 아빠방》(김경현, 다시서점, 2016.3.30.)

《더러워진 옷에 웃으며 우아하게 대처하는 법》(신수철, 무모한 스튜디오, 2022.7.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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