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길막힘 2022.8.15.달.



‘길’이란 따로 어디부터 어디까지 잇는 금이나 줄이 아니야. 가는 길이건 오는 길이건 물이 흐르듯 “거쳐서 만나는 이웃 삶”이지. 물은 한 줄로 가지 않아.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얼핏 나란히 내리는 듯하지만, 빗물을 잘 보겠니? 모든 빗물은 이쪽저쪽 춤추며 이 땅으로 찾아온단다. 사람이 처음 낸 길조차 곧거나 반듯하지 않았어. 첫사람은 슬기로웠기에, 길을 낼 적에 ‘바람결’하고 ‘냇물결’하고 ‘풀결’을 살폈어. 가까운 데여도 ‘숨결’을 헤아리면서 부드러이 돌아갔단다. 나중에 서둘러야 하는 때에 이르자 ‘지름길(지르는 길)’을 살짝 내곤 했는데, 지름길은 아주 서두를 적에만 탈 뿐, 늘 ‘돌고도는 길을 느긋이’ 다녔단다. 지름길도 한길도 빠른길도 아닌 돌고도는 길을 누린 첫사람은 왜 슬기로울까? 첫사람은 나무도 꽃도 풀도 나비도 벌도 숲짐승도 풀벌레도 개미도 새도 거미도 하나하나 보았어. 돌도 모래도 샘물도 바위도 구름도 별도 하나하나 보았단다. 돌고도는 길을 즐겁게 다니면서 느긋하던 첫사람은 스스로 모든 삶·살림을 받아들이고 가꾸었지. 이 숨결로 스스로 사랑이 되었어. 돌고돌기에 ‘모두’를 보면서 ‘하나’를 함께 보았단다. 그런데 오늘날 너희는 빠른길(고속도로)에 큰길을 자꾸 내며 그저 곧게 뻗더군. 너희는 어느새 ‘모두’도 안 보고 ‘하나’도 안 보더라. 빨리 가려는 길은 그야말로 아무것(모두+하나)도 안 보는 죽음길이야. 돌고도는 길이기에 온빛(모두+하나)을 보는 살림길이지.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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