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네가 2023.7.26.물.



네가 선 곳으로 바람 한 줄기가 부는구나. 이 바람은 어디서 태어났을까? 네가 선 나무 둘레로 멧제비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춤추더니 가볍게 지나가는구나. 멧제비나비는 어디서 태어났을까? 네가 사는 집에서 노는 지네나 거미나 곱등이는 언제부터 살았을까? 너희 집이 서지 않았을 즈믄해(1000년) 앞서부터, 또는 1만 해쯤 앞서부터, 이곳이 그들 모두한테 보금자리이지 않았을까? 새 한 마리가 그냥 찾아오는 일이란 없어. 개구리도 뱀도 마찬가지야. 그곳에 사람만 있어야 한다고 여기니? 너희 빼놓고는 모두 사라져야 하니? 그런데 보렴. 별빛·햇빛은 늘 찾아가. 네가 사는 곳에 별빛·햇빛이 안 찾아가면, 너희는 얼어죽어. 빗물은 늘 찾아가. 빗물이 너희 집 지붕을 톡톡톡 두들기기에, 너희 보금자리에 풀이 돋고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이슬이 맺고, 마실물을 얻어. 개미에 지렁이에 쥐며느리가 있으니, 모든 찌꺼기를 정갈하게 치워서 흙을 살찌워. 너희가 땅에 뭘 심어서 너희 몸을 살리는 먹을거리를 얻으려면, 해바람비뿐 아니라, 모든 풀꽃나무에, 벌나비에, 벌레에, 새에, 이 푸른별 뭇목숨이 하나되어 흐를 노릇이란다. 하나라도 빼면 이 별이 흔들리지. 너희 몸 어느 곳을 함부로 떼거나 자르면 너희 몸이 통째로 흔들리고 앓는단다. 그래서, 네가 누구를 미워하거나 꺼리거나 내치거나 밀치면, 이 별에는 죽음바람이 퍼져. 미움씨·두렴씨·죽음씨는 바로 네가 스스로 심는단다. 어느 누구도 나쁘거나 좋지 않아. 모두 ‘너(나)’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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