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맨드리 2023.7.19.물.



너희가 쓰는 말은 이미 누가 마련해 놓았어. 너희가 마시는 바람하고 물도 이미 푸른별에서 까마득히 오랜 나날을 흐르고 맴돌았어. 너희가 쬐는 해도 이미 태어나서 빛나는 저 별이야. 너희가 살아가는 푸른별도 너희가 있기 앞서 이미 있지. 그런데 너희 빛(넋·숨)이 깨어날 적에 비로소 이 모든 ‘맨드리’를 느끼고 보고 받아들이고 알아. 너희 (넋·숨)이 아직 안 깨어났으면, 이미 있는 모든 것이지만, 너는 어느 하나도 못 느끼고 못 본단다. 멧자락도 들도 바다도 구름도 ‘맨드리’이지만 얼마나 제대로 보니? 너희 푸른별을 둘러싼 뭇별도 ‘맨드리’인데 어느 만큼 찬찬히 보니? 어떻게 언제 태어난 맨드리인지 헤아리겠니? 이 맨드리로 네가 새롭게 지을 빛을 생각하겠니? 맨드리인지 아닌지 안 느끼고 못 보는 채 쳇바퀴를 도는 하루를 되풀이하겠니? ‘맨드리가 아닌 것’은 없을 텐데, ‘너희 지음’은 무엇이 될까? 너는 서려는 마음이기에 몸이 서고, 마음에는 ‘선 몸으로 있는 하루’를 담아. 너는 심심하거나 따분하다고 그리기에 몸이 심심하거나 따분하고, 마음에 ‘심심하거나 따분한 몸으로 보낸 하루’를 새겨. 삶에 무엇을 ‘매어’ 놓을 셈이니? 마음에 매어놓으니, 너희 모습·매무새로 굳고, 이 모습이 너희 겉모습(맵시)이야. 겉모습도 ‘씨(맵시)’이기에 자꾸자꾸 이대로 나아가는 길을 아로새긴단다. 그러니, 속마음도 겉모습도 머리도 네가 스스로 ‘오롯이 사라앟는 빛’ 하나를 매만져서 놓을 일이야. 맨손으로 짓고, 맨발로 가고, 맨몸으로 받아들이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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