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책집마실


겨울에 가을잎 (2022.12.7.)

― 광주 〈백화서점〉


 

  철눈(절기)으로 보면 큰눈(대설)이라는 12월 7일에 광주책집을 오갑니다. 이튿날 아침에 전남 장흥에 가서 그곳 푸름이한테 들려줄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오래 쓴 등짐이 새삼스레 끈이 나달나달하기에 갈 수 있는지 묻기도 해야 합니다. 80들이(80리터) 등짐은 어깨끈을 갈기 힘들다고 합니다. 새로 샀습니다.


  달종이로 치면 겨울이되, 전라남도는 노랗게 물든 가을잎이 길바닥을 덮습니다. 부릉부릉 매캐한 길이 아닌 푸릇푸릇 애벌레가 기어다니는 흙바닥에 내려앉은 가을잎이라면 매우 그윽하리라 생각합니다. 잎 하나에도 온누리가 깃듭니다.


  계림동 〈백화서점〉 앞에 섭니다. 이 둘레를 걸어다니는 젊은이나 어르신은 드뭅니다. 옷집도 찻집도 술집도 밥집도 없는 곳이라 휑뎅그렁하다고 여길는지 모르나, 계림초등학교하고 광주고등학교 앞 큰길을 따라 헌책집 여럿이 있습니다. 함께 읽으면서 함께 자랄 이야기밭을 누릴 만한 데예요. 함께 생각하며 함께 크려는 아이어른이라면 가을잎이 드리운 이 길을 거닐다가 책 한 자락 품을 만합니다.


  우리는 손에 무엇을 쥐는 하루인가요? 우리는 발바닥에 어떤 땅바닥이 닿는 터전인가요? 우리는 눈에 어떤 모습을 담는 오늘인가요?


  골마루를 천천히 거니는데 책집으로 스미는 빛줄기가 남다릅니다. 책집지기님한테 여쭈어 찰칵찰칵 담습니다. “뭘 그렇게 찍으시우?” “책시렁으로 들어오는 볕살이 참으로 아름다워서요.”


  나무로 짠 시렁에, 나무한테서 얻은 숨결로 여민 책이 있고, 풀꽃나무를 살찌우는 볕살이 부드럽게 이 겨울을 밝히면서 작은책집으로 들어옵니다. 첫겨울 빛줄기는 책꽂이 나무빛을 환하게 보듬습니다. 찰칵 소리를 내면서 담고, 손으로 햇볕을 살살 쓰다듬다가 손바닥에 담습니다.


  등을 돌리거나 지면, 스스로 안 바라보는 마음이요 몸짓이니, 이때에는 참빛을 스스로 느낄 수 없어서, 어느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하느라, 어느새 아무것도 배우지 못 하는 하루를 살 테지요. 등돌리거나 등지면 그만 스스로 바보라는 굴레에 삶을 가두는 셈이로구나 싶어요. 해가 나기에 해바라기를 합니다. 큰고장 한복판에서도 나무 곁으로 다가가서 나무줄기를 쓰다듬으면서 풀바라기를 합니다.


  그리고 살짝 틈을 내어 책집마실을 합니다. 저녁에 길손채에 깃들어 읽을 책을 헤아립니다. 이미 읽은 책도, 새로 읽을 책도, 손수 쓸 책도, 오늘 이곳에서 보내는 발걸음을 북돋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여럿을 가져갈 수 있다면 잔뜩 짊어질 테지만, 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면 마음을 품고서 가려고 합니다.


ㅅㄴㄹ


《20 현금출납장》(기아자동차주식회사, ?)

《아주르와 아스마르》(미셸 오슬로/김주열 옮김, 웅진주니어, 2007.9.20.)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안철수, 비전, 1995.2.10.)

《고요한 바다》(예룬 판 헤얼러/이병진 옮김, 세용출판, 2007.12.31.첫/2009.3.25.2벌)

《모모》(미카엘 엔데/차경아 옮김, 청람, 1977.첫/1993.10.13.2판 9벌)

《TRUMP : The Art of the Deal》(Donald Trump, Random House, 1987.첫/Mass Market Edition 2005.1.첫)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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