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34 최고 2023.5.2.



하늘은

얼마나 높아야 하나?

땅은

얼마나 깊어야 하지?


하나가 높을수록

하나가 낮아야 한다

하나를 올릴수록

하나를 내려야 하지


개미한테도 나한테도

하늘은 그저 하늘

독수리한테도 너한테도

구름은 줄곧 구름


노을처럼 노래하며 간다

너울처럼 놀며 어울린다

가장 높으려는 허울 벗고서

가벼이 놓으며 하늘빛으로


ㅅㄴㄹ


누구를 높이면, 둘레에 누구는 저절로 낮추게 마련입니다. 높낮이나 앞뒤를 따지면, 첫째나 으뜸 둘레에 막째나 꼴찌가 있습니다. ‘최고(最高)’는 “1. 가장 높음 2. 으뜸인 것. 또는 으뜸이 될 만한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첫째나 으뜸이란 자리가 나쁘지 않다면, 막째나 꼴찌라는 자리도 안 나쁘겠지요? 그저 자리를 갈라 놓을 뿐이거든요. 그렇지만 우리나라나 이웃나라를 보면, 으레 첫째나 으뜸만 눈여겨보거나 치켜세웁니다. 다들 첫째나 으뜸이 되려고 자꾸 겨루거나 싸우거나 다퉈요. 함께 걸어가는 길이나 어깨동무를 하는 살림살이가 아닌, 혼자만 떵떵거리려는 굴레 같습니다. 요즈음은 시골에서 살아가며 철마다 다르고 달마다 다르며 날마다 다른 풀꽃나무를 곁에서 지켜보는 어린이가 아주 드뭅니다만, 아무리 서울·큰고장에서 살아가는 어린이와 어른이 많더라도, 모든 풀꽃나무는 겨룸·다툼·싸움을 안 해요. 서로서로 다 다른 때·날·달·철을 살펴서 스스럼없이 피고 집니다. 다 다른 숨결이 다 다르게 피고 지듯, 다 다른 사람도 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하루를 기쁨으로 짓고 나눌 적에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허울을 벗고 너울이 되어 봐요.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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