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2023.5.10.
오늘말. 진구렁
어린 날 놀던 마을에는 큰나무가 있어 으레 여러 벌레를 잡습니다. 배움터 울타리에도 우람나무가 있어 나무타기를 하면서 사슴벌레를 찾고 딱정벌레를 살핍니다. 우리는 벌레잡이를 하면서 놀지만, 어른들은 ‘곤충채집’이라는 이름을 씌웠습니다. 열네 살로 접어들자 놀이가 확 사라지고 새벽부터 밤까지 배움터에 붙들려 배움수렁에 갇혀야 했습니다. “여섯 해를 죽은 듯이 살면 돼. 그다음부터 놀면 돼.” 하면서 억눌렀어요. 죽을맛이었습니다. 이 진구렁은 왜 팠을까요? 왜 푸른철을 푸르게 노래하지 말아야 할까요? 둘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쳐다보지 말라고, 오직 셈겨룸(시험)만 파라고 내몰더군요. 꼼짝없이 수렁에 잠겨 벼랑끝에 내몰린 여섯 해를 살아내고서 겨우 늪에서 빠져나온다 싶더니, 이다음에는 돈을 잘 벌어들일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다른 가시밭으로 몰아세워요. 이 나라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내쫓기는 몸입니다. 휘청거리지요. 털썩 주저앉고 폭삭 무너집니다. 어린이랑 푸름이를 무시무시하게 닦달하는 어른도 똑같이 죽음판이지 않을까요? 다같이 와르르 끝장날 구렁 같습니다. 이제는 이 낭떠러지에서 나가야 할 때입니다.
ㅅㄴㄹ
딱정벌레·벌레·버러지·잎벌레·풀벌레 ← 곤충
불구덩이·불밭·불수렁·수렁·벼랑·벼랑끝·서슬·바닥·밑바닥·구렁·낭떠러지·늪·가시·가시밭·고비·굴러떨어지다·가라앉다·끝장나다·막다르다·무섭다·무시무시하다·기울다·끔찍하다·맵다·어렵다·힘들다·와르르·우르르·잠기다·주저앉다·죽을맛·죽음판·죽음터·아찔하다·진구렁·진창·털썩·폭삭·휘청 ← 나락(那落/奈落)
가다·나가다·떠나다·뒤로하다·옮기다·내쫓기다·쫓기다 ← 이주(移住)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