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정 2023.4.27.나무.



어느 자리에 어느 낱말을 꼭 써야 한다고 여길 수 있어. 이 같은 마음은 틀리거나 나쁘지 않아. 다만, 하나는 헤아려 보겠니? 네가 쓰려는 낱말은 ‘그 결을 나타내는 하나뿐인 말’이니? 아니면 ‘그 결을 그 말로 나타내야 한다고 여기는 마음’이니? 아니면 ‘그 결을 나타낼 숱한 말을 모조리 안 듣고 안 받아들이겠다’고 닫아거는 셈이니? 아니면 ‘그 결을 나타낼 말로 새롭게 찾거나 지을 마음이 없다’는 셈이니? 한자를 쓰는 중국사람은 ‘情’이라는 글씨를 쓰면서 그들 마음을 나타내겠지. 한자를 쓰는 중국사람을 섬기거나 만나려는 한국사람도 ‘정情’이라는 한자를 나란히 쓸 테고. 그런데 중국에도 한자를 모르거나 안 쓰는 사람이 많아. 한국이라는 나라도 마찬가지야. 누구나 쓰던 글이 아니요, 누구나 알던 ‘정’이 아닐 텐데, 이 한자말에 매달리거나 얽매여야 할 까닭이 있을까? 모든 ‘말’은 ‘마음’을 담아. 마음이 물처럼 맑으면, 물처럼 맑게 노래로 흐르는 말이야. 물처럼 맑게 말하며 마음을 나누는 사이로 만나면서 ‘마을’이 생기고 퍼져. 숱한(수수한·많은) 사람들은 마을에서 맑게 마음을 나누고 한 우물·샘물·냇물을 나누면서 푸르게 어울리지. 곰곰이 보면, 마음을 잊다가 잃으면서, 말을 잊다가 잃고, 마을을 잊다가 잃으니, 맑은 물도 저절로 잊다가 잃더라. 넌 무엇을 붙잡니? 너는 ‘마음’을 붙잡니? 아니면, 이 어느 것도 안 붙잡으면서 마음을 부드럽고 즐겁게 말에 담아서 맑게 만나는 사이로 노래하니?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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