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28 시작 2023.4.27.



아직 하지 않았으면

이제부터 하겠구나

첫머리를 잡기까지 살피고

첫발을 떼기까지 헤아리지


오늘 드디어 해보려고

막 손을 대었구나

처음에는 낯설거나 두려워도

첫밗부터 배부를 수 없어


싹을 틔운다

잎을 낸다

활짝 연다

길을 나선다


나한테서 비롯하고

너한테서 태어나고

우리가 낳고 싶은 씨앗인

생각과 마음과 말을 본다


ㅅㄴㄹ


한자말 ‘시작(始作)’은 “어떤 일이나 행동의 처음 단계를 이루거나 그렇게 하게 함”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뜻으로는 “처음(始) + 지음(作)”인 얼거리로, 우리말로는 ‘비로소·비롯하다’이며, ‘나다·나오다·태어나다’나 ‘열다·트다’나 ‘하다·가다’나 ‘밑·뿌리·바탕’이나 ‘-부터·걸음마·기지개’로 옮길 만합니다. 일본스런 한자말 ‘시작’은 쓰임새가 넓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때와 곳에 따라 다르게 낱말을 살펴서 쓸 자리에 두루뭉술하게 ‘시작’을 자꾸 쓰다 보니 어느새 밑말도 바탕말도 잡아먹히거나 사그라듭니다. 우리는 우리말로 우리 삶과 넋과 마음을 나타내거나 담아내는 일부터 서툴다고 여길 만합니다. 하나하나 스스로 헤아려서 처음으로 지으려는 길을 좀처럼 안 갔다고 할 만합니다. 첫술이나 첫밗부터 배부를 수 없어요. 첫걸음부터 차근차근 뗄 노릇입니다. 온누리 모든 말은 스스로 살림을 짓는 곳에서 싹트거나 움터서 자랍니다. 수수한 살림살이 하나에서 비롯하는 말이고, 자그마한 마음씨앗 한 톨에서 태어나는 말입니다. 이제부터 스스로 바라보고 생각하고 가다듬어 말빛을 꽃피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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