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25 타협 2023.4.25.



입으로 말하지 않고

손으로 글쓰지 않는

아기를 폭 안는다면

마음으로 이야기하지


이슬 먹으며 자라고

별밤 누리며 잠들고

해바람비랑 어울리는

풀꽃나무랑 마음으로 만나


맞추려 들지 마

마음으로 마주해

마땅히 여기지 마

말을 섞고 귀기울여


허울스런 허수아비도

꽃하고 먼 꼭두각시도

나를 잊다가 잃어

나몰라라 되었어


ㅅㄴㄹ


한자말 ‘타협(妥協)’은 “서로 조금씩 물러나면서 한뜻이 됨”을 가리킨다고 여길 만한데, 사람들은 낱말뜻대로 쓰기도 하지만 “곧거나 바르거나 참되게 나아갈 길을 꺾거나 물리면서, 억지스럽게 맞추어 들어가고 길미를 조금 얻느라 첫뜻이나 참뜻을 저버리거나 등지는 짓”을 가리킬 적에도 씁니다. 참을 밝히고 거짓을 치우는 길에서는 물러날 데가 없게 마련입니다. 풀죽음물을 뿌리면 풀이 죽을 뿐 아니라 풀벌레에 벌나비도 죽고 사람한테까지 나쁜데, 풀죽음물을 조금만 치겠다고 ‘타협’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타협’을 하자고 말하는 쪽은 으레 ‘잘못을 저지른 무리’이더군요. 참빛을 바라는 목소리에 밀려 몽땅 쫓겨날 듯한 얄궂은 쪽에서 ‘타협안 제시’를 으레 먼저 합니다. 처음부터 어깨동무(협동·협력)를 하는 길을 밝혔다면 사람들이 참빛을 바라며 목소리를 우렁차게 내지 않았겠지요. 하늘빛이 아닌 허울빛을 쓰기에 거짓말을 하고, 꽃이 아닌 꼭두각시 노릇을 하니 눈가림을 합니다. 나다움을 잊으니 어느새 날개를 잃어 이 일에도 등지거나 저 일에도 눈감는 ‘나몰라라(나를 모르다)’로 뒹굴어요. 무엇을 말하고 들어야 사람일까요?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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