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취소 2023.4.22.흙.



물을 못 마시는 사람은 없어. 물을 못 마신다면 이미 딱딱하게 몸이 굳었을 테니까. 찰랑이는 맑은 빛인 물이 있고, 열매·낟알·풀·살점에 깃든 물이 있어. 밥이든 빵이든 물이란다. ‘밥이라는 모습을 이룬 물’이나 ‘빵이라는 모습이 된 물’이야. 밥이나 빵에서 물기운을 빼면 곧장 바스라져서 가루조차 아닌 먼지가 된단다. ‘밀가루·쌀가루’는 물기운을 아주 빼내어 오래 건사한다고 여기지만, ‘하나도 없지는 않’아. 물기운이 하나도 없으면 ‘모습·꼴’이 풀어져서 흩어지거든. ‘가루’는, ‘숨기운인 물’을 그야말로 적게 남겼다가 나중에 물을 부어 되살리는 밥살림이야. ‘먼지’는, 모든 숨기운(물기운)이 사라졌기에 한덩이를 이룰 수 없어서 여기저기 그냥 날리는 부스러기이거나 조각이지. 네가 ‘그냥 물’을 마시든 ‘다른 먹을거리 모습으로 바뀐 물’을 먹든, ‘물기운을 받아들여서 숨기운을 살리는 얼개’를 읽을 수 있으면 돼. 이 얼개·길·꼴·그림을 읽는다면, ‘취소’라는 일이 없는 줄 알 만해. “하기로 했는데 안 하기”에 ‘취소’이지 않아. “안 하기로 하는 일을 하기”가 ‘취소’란다.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 되묻겠니? 그러나 알아두렴. “일을 안 하는” 사람은 없어. 누구나 언제나 ‘무슨 일’이든 하고 ‘무슨 배움길’이든 걸어서 ‘무슨 앎빛’이든 받아들인단다. 누구는 ‘살리는 앎빛’을 받아들여서 싱그럽지. 누구는 ‘살리는 앎빛을 등지거나 내치면서 새롭게 숨기운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어 그만 스스로 모르는 굴레에 갇혀서 죽어가는 캄캄길’을 받아들이더라. ‘앎빛·숨기운’을 ‘안 받아들이는 일을 하기’를 일삼는 셈이니, 뭐 언젠가는 알아차릴까? 죽기 싫다면 말이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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