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 숲노래 말넋 2023.4.21.

오늘말. 잠자코


새봄에는 새빛을 말없이 바라봅니다. 비오는 날에는 빗소리에 온마음을 기울이면서 소리없이 지켜봅니다. 말을 안 해야 하지는 않습니다만, 봄이 무르익는 사월이 흐를 적에는 봄맞이새가 지저귀는 곁에서 개구리가 노래하고, 이 곁에서 드디어 풀벌레도 깨어나서 겨우내 잠자코 잠들던 숨소리를 훅 터뜨려요. 고요하고 그윽하던 겨울밤은 사라집니다. 밤새 온갖 봄노래가 곳곳에서 울려퍼집니다. 다만, 지난날에는 온나라 어디에서나 봄노래에 밤노래였다면, 이제 서울이나 큰고장은 시끌시끌 쇳덩이 소리가 그득해요. 바람이 흘러가도 느끼지 못 하고, 자그마한 풀벌레한테 휘파람으로 대꾸하는 사람이 드물고, 제비에 휘파람새에 소쩍새가 울 적에 가만가만 귀를 여는 이웃이 확 줄어듭니다. 봄에 봄빛을 맞아들이지 않으면 어떻게 봄을 알까요? 달종이는 봄을 안 알려줍니다. 새뜸(신문)도 봄을 안 보여주어요. 틀에 갇힌 서울살림(도시생활)은 온통 입막음에 잿빛으로 뒤덮으면서 싱그러운 빛줄기를 눙쳐 버리는 듯싶습니다. 겨울 다음은 봄이듯, 봄 다음은 여름입니다. 여름 다음은 가을이고, 바야흐로 새로 찾아드는 겨울일 텐데, 다들 그저 건너가기만 합니다.


ㅅㄴㄹ


말없다·말하지 않다·소리없다·말하면 안 되다·말을 안 하다·말을 않다·모르는 척하다·모르는 체하다·모르쇠·밝히지 않다·밝히면 안 되다·아무말 없다·암말 없다·아무 대꾸 없다·안 드러내다·안 밝히다·안 보여주다·안 알려주다·가만히·가만·가만가만·얌전하다·고요하다·새근새근·잠자코·조용하다·건너가다·넘어가다·눙치다·흘러가다·다물다·닫치다·대꾸없다·덮다·뒤덮다·입닫다·입다물다·입막음·쉬쉬하다·쉿·쥐죽은 듯하다 ← 묵묵, 묵묵부답, 묵비(默秘), 묵비권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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