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629
《三中堂文庫 356 뻐꾸기 둥지위를 날아간 사나이 (下)》
켄키지 글
김진욱 옮김
삼중당
1977.9.10.첫/1977.12.20.중판
요사이 나오는 책은 으레 ‘비닐로 겉을 씌우기’를 합니다만, 1990년 즈음까지는 투박한 종잇결 그대로였어요. 읽은 사람 손길·손때·손빛이 책마다 고스란히 흘렀습니다. 지난날 배움터는 배움책(교과서)을 물려주고 물려받는데, 겉종이가 지저분하거나 다치면 길잡이(교사)가 매를 들거나 잔뜩 꾸짖었어요. 새 배움책을 받든 헌 배움책을 받든 다들 이런저런 종이를 얻거나 주워서 겨우겨우 겉을 싸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책집에서 곧잘 한 꺼풀 싸주었어요. 작은책을 싸면 종이가 적게 들지만, 적잖은 책손은 “종이를 넉넉하게 잘라 주셔요. 저희가 집에 가져가서 쌀게요.” 하고 얘기했어요. 종이 한 자락 값이 제법 비싸던 무렵이니 ‘책싸개’를 다른 데에 쓰려고 얻는달까요. 1977년 12월에 찍은 《三中堂文庫 356 뻐꾸기 둥지위를 날아간 사나이 (下)》는 ‘광화문서적’에 ‘한국해외출판물주식회사’에 ‘월간 내외출판계’ 글씨를 새긴 책싸개를 두릅니다. 어느 자리에서 쓰던 종이일까요? 세 책터 가운데 〈광화문서적〉은 경기 수원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서울에서 책집을 하던 어버이 뜻을 이었다지요. 조그맣고 낡은 책 귀퉁이에 “2022.10.18. 서울 신고서점. ㅅㄴㄹ”을 적었습니다. 돌고도는 책이 다음에 어느 손길을 받아 새삼스레 읽히려나 어림하는 징검돌 자취를 보태는 셈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