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넋 / 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75 날



  하루가 빛난다면 이틀도 빛나고 사흘도 빛나며, 나흘 닷새 엿새 열흘 스물 모두 빛납니다. 한 해 삼백예순닷새 모두 빛나요. 하루가 어둡다면 이틀도 어둡고 사흘도 어두우며, 나흘 닷새 엿새 열흘 스물 모두 어두우니, 한 해 내내 어둡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날은 한 해 가운데 하루라고 일컫는데, 밤에 잠들어 아침에 깨어나는 삶을 돌아본다면, 모든 날이 빛날(생일)이로구나 싶어요. 첫날을 첫걸음 삼아 두걸음 석걸음 차근차근 딛습니다. 다 다른 하루를 다 다르게 걸어가면서 언제나 스스로 빛나는 눈길로 오늘을 지어요. 둘레에서 치켜세워 줄 빛날 하루가 아닌, 스스로 춤출 한 해 모든 날입니다. 이 얼거리를 문득 깨달은 때부터 빛날잔치(생일파티)를 아예 안 하고, 제가 태어난 하루라는 날마저 잊습니다. 다 다른 한 해 내내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새삼스레 즐길거리에 웃음거리에 이야깃거리에 생각거리에 사랑거리에 살림거리를 찾아내고 가꿉니다. “왜 진작 몰랐을까?” 하고 뉘우칠 일은 없습니다. 오늘 알았다면 오늘부터 빛나면 돼요. 아직 모르면 앞으로 익히고 새겨서 빛나면 되어요. 누구나 알맞구나 싶은 때에 눈을 뜨고 마음을 열어 맞아들입니다. 빨리 살아낼 하루가 아니듯, 얼른 읽어치울 책이 아니니, 가볍게 걸어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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