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기어서 2023.4.2.해.



기어서도 가고, 걸어서도 가고, 날아서도 가고, 달려서도 가. 멈춰서더라도 가고, 그치더라도 간단다. 눈뜨고도 가고, 눈감고도 가네. 보면서 가고, 안 보면서 가는구나. 알기에 가고, 모르지만 아무튼 가네. 너는 어떻게 가는 마음이고 오늘이니? 너는 네가 가는 모습이나 몸짓이 창피하니? 숨기거나 감추거나 없애고 싶니? 너는 네가 나아가는 모습이나 몸짓이 자랑스럽니? 널리 보이거나 알리거나 밝히고 싶어? 뒷걸음도 앞걸음도 옆걸음도 제자리걸음도 다 다르지만 다 똑같이 나아가는 길이야. 낫거나 나쁜 길이 아닌, 나아가는 길이야. 그래서 너는 ‘나아갈 하루’를 아침마다 그리고 밤마다 되새기면 돼. 곤두박질도 나아감이야. 미끄덩도 나아감이야. 벌렁 자빠지거나 와장창 깨져도 나아감인걸. ‘나아감’이 아닌 길은 없어. 그런데, “길에 들어서다”가 ‘길들’곤 하지. 모든 다 다른 나날과, 모든 다 다른 삶과, 모든 다 다른 마음을 보렴. 네가 ‘다른 나날’을 보고 느낄 적에는 ‘길들지’ 않아. 네가 ‘안 다른 나날’을 스스로 그려서 똑같이 되풀이를 하니 ‘길들’어. ‘길들’면 얼핏 겉모습이 반들반들·반질반질하지. 속에서 샘물처럼 우러나는 ‘살림빛’이 아닌, 겉으로만 매끄러운 시늉을 하는 ‘길듬빛’에 머문다면, 넌 ‘길을 가는 하루’가 아닌 ‘길을 잃는 벼랑’이란다. 반들거리거나 매끄러운 겉빛(겉치레·겉돈·겉옷·겉이름·겉힘)에 언제까지 휘말리겠니? 너는 네 ‘다 다른 길’을 늘 새롭게 가면서 스스로 빛나면 돼. 네 ‘스스로빛’은 안 작고 안 크단다. 오직 네 ‘살림빛’인걸. 오늘도 넌 천천히 기어서 맴돌이를 하는구나. 그러나 맴돌이도 ‘나음길’인 줄 알아차리렴.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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