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그곳 2021.12.17.쇠.
네가 보는 곳으로 네 기운이 흘러들어. 네가 있는 곳으로 네 생각이 뿌리내리고 싹터. 네가 서는 곳으로 너를 감쌀 바람이 불고, 너를 살찌우는 해가 비춰. 네가 그곳에 있기에 그곳이 네 기운을 받아서 빛나지. 네가 그곳에 없으면 그곳은 빛나지 않아. 그래서 ‘일터’라는 이름으로 너희를 오래 붙들어 두려고 한단다. 너희 기운을 받아서 그곳이 밝거든. 너희가 그곳에 가지 않고, 있지 않고, 머물지 않고, 보지 않으면, 그곳은 차츰 잊히면서 까맣게 타들어가다가 먼지가 되어 바스라지고 사라지지. ‘그곳’이란 ‘모든 곳’이야. 큰고장·서울도, 너희 집이나 마을도, 숲도 길도 똑같아. 너희는 숲에 안 사는데 숲은 멀쩡하지 않냐고? 풋. 웃기는구나. 너희가 숲에서 거의 안 살지만, 너희는 ‘그곳 숲’을 참 자주·오래·늘 생각하지 않니? 비록 큰고장·서울에서 사는 사람이 숲하고 동떨어져 지낸다지만, ‘잘 몰라’도 숲을 생각한단다. 그래서 숲은 아직 이 별에서 너희 큰고장·서울을 버티거나 살리는 터전으로 있어. 시골을 보렴. 차츰 사람이 줄어드는 작은고장을 보렴. ‘머물거나 살거나 있는’ 사람뿐 아니라 그곳을 생각하는 사람부터 확 줄어드니까 그곳은 차츰 죽어간단다. 돈을 뿌려야 살지 않아. 그곳을 즐겁게 떠올리거나 그리거나 생각하는 틈이 있어야 그곳이 살아가지. 너희는 너희 집과 마당과 뜰과 터를 얼마나 생각하니? 얼마나 즐겁게 생각하니? 얼마나 사랑으로 생각하니? 얼마나 즐겁게 누리고 보고 돌보면서 생각하니? 눈길·손길·발길·마음길이 모두 모이기에 너희가 살아가는 그곳이 빛나. 너희는 늘 기운을 둘레에 빛살로 뿌리는 숨결이야. 너희 숨빛을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쏟니? 너희는 무엇을 늘 보고 생각하고 그리는 하루를 살아가니? 너희 눈·코·귀·입은 어느 곳에 있니?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