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68 빛날책



  이제 ‘케익’이란 이름인 먹을거리를 살짝 먹을 수 있습니다만, 싸움판(군대)에 끌려간 스물한 살 때까지 아예 못 먹었습니다. 싸움판에 끌려간 첫해 한겨울에 눈밭을 하염없이 걸으며 멧골을 끝없이 넘는데요, “이 눈은 케익이야. 난 이 눈케익을 즐겁게 먹으면서 마지막까지 걸어내고 말 테야.” 하고 생각했어요. 뜨거운물도 그릇에 담자마다 식어버려 이내 얼어붙던 강추위에 눈을 훑어먹고서 여덟 달 뒤에 비로소 말미(휴가)를 얻어 밖에 나왔어요. 동무한테 “나 케익 사 줘.” 하고 얘기했고, 커다란 ‘생크림케익’ 두 판을 혼자 먹어치웠습니다. 다만 그 뒤로 케익을 따로 먹지는 않아요. 제 몸에서 안 받거든요. 아마 아홉열 살 무렵일 텐데, 우리 아버지가 작은아들 태어난날이라며 거나한 채 케익을 사오셨고 어머니는 “에그, 그 아끼는 작은아들이 케익을 먹으면 배앓이를 하고 게우는데, 또 사왔네.” 하며 혀를 차셨어요. 이날도 어김없이 배앓이를 하고 게우며 눈물범벅이었어요. 저한테 ‘태어난날(생일)’은 눈물투성이입니다. 누가 난날을 기리자고 하면 “어느 하루만 아닌, 모든 날이 아침에 새로 눈뜨니 빛날(생일)이에요.” 하고 말해요. 하루를 기리는 빛날책도 좋을 테지만, 저는 ‘온날책’이 한결 마음에 듭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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