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 숲노래 말넋 2023.3.6.
말꽃삶 8 나란꽃 함꽃 여러꽃
모든 말을 새로 짓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말짓기가 어려울 수 없습니다.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말에 담을 뿐입니다. 말짓기는 안 어려운데, 나라(정부)라든지 배움터(학교)라든지 말글지기(언어학자·국어학자)는 아무나 함부로 새말을 엮거나 지으면 안 된다는 듯 밝히거나 따지거나 얽어매거나 짓누르곤 합니다.
새말짓기란, ‘새마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새말엮기란, ‘새넋으로 스스로 피어나는 꽃’입니다. 새말 한 마디를 지을 적에는, 낡거나 늙은 마음을 내려놓고서 반짝반짝 새롭게 빛나는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새말 한 자락을 엮을 적에는, 고리타분하거나 갑갑하거나 추레하거나 허름한 모든 허물을 내려놓고서 스스로 싱그러이 피어나는 꽃다운 넋으로 거듭납니다.
나라(정부)에서는 사람들이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요. 사람들이 깨어나면 사람들은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안 하거든요.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짓고 사랑을 나눌 적에는, 온누리 어디에서나 총칼(전쟁무기)이 사라지고 어깨동무를 널리 펼 뿐 아니라, 아이어른이 사랑으로 보금자리를 짓고, 순이돌이(남녀)가 더는 서로를 괴롭히거나 다투는 짓을 안 할 뿐 아니라, 위아래(위계질서)를 모두 허물어 아름터로 달라져요.
아름터·사랑터·노래터·꽃터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바로 ‘새말짓기·새말엮기’입니다. 말 한 마디를 새로 짓는 일이 왜 새나라 첫걸음일까요? 아주 자그마한 말 한 마디부터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서 바꾸어 낼 줄 알 적에 모든 삶·살림·사랑을 스스로 짓는 길을 바로 우리 스스로 깨닫거든요. 이와 달리, 우리가 배움터(학교)를 오래오래 다니거나 책만 오래오래 읽거나 새뜸(신문·방송)에 오래오래 기댈 적에는 ‘나라(정부)에서 내려보내는 부스러기(지식·정보)만 받아들여서 외우게 마련’입니다. 이때에는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기운이 사그라들어요. 삶길을 이루는 말을 나라(정부)에서 내려보내는 대로 받아들여서 외울 적에는 얼핏 ‘성가시거나 귀찮거나 번거로운 일이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 보면 ‘스스로 삶을 짓는 마음이 모두 가로막히거나 사그라드는 끔찍한 수렁에 갇히는 모습’입니다.
[국립국어원 낱말책]
혼혈(混血) : 1. 서로 인종이 다른 혈통이 섞임. 또는 그 혈통 ≒ 잡혈 2. 혈통이 다른 종족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 = 혼혈인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혼혈’이라는 낱말을 두 가지로 풀이합니다. 둘레(사회)에서 이 한자말을 널리 씁니다. 우리말로 ‘섞다·섞이다’를 쓰면 마치 따돌림(차별)이라도 되는 듯 여깁니다. ‘튀기’ 같은 우리말은 아예 깎음말로 여기지요.
그러면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한자말 ‘혼혈 = 혼 + 혈 = 섞음 + 피’예요. 나라에서는 이 한자말을 써야 ‘차별이 아님’으로 여기지만, 가만히 보면 ‘혼혈 = 섞음 = 튀기’인 얼개입니다. 그러니까 이 나라는 ‘어느 말을 쓰면 따돌림이다’ 하고 못을 박는 시늉을 하지만, 정작 ‘우리말을 쓰면 따돌림이다’ 하고 뜬금없는 굴레를 씌우는 모습입니다.
[숲노래 낱말책]
함둥이 (함께 + 둥이) : 씨줄·핏줄·집안·갈래·씨가름이 다른 사이에서 태어난 숨결. 씨줄·핏줄·집안·갈래·씨가름을 여럿 받아서 태어난 숨결. 여러 씨줄·핏줄·집안·갈래·씨가름이 나란히 있거나 어우러지거나 섞인 몸으로 태어난 숨결. (= 함피·함꽃·여러피·여러꽃·나란둥이·나란피·나란꽃·섞다·어우러지다. ← 혼혈, 혼혈인, 혼혈아, 다인종多人種)
한자말이기 때문에 ‘혼혈’이란 낱말을 안 써야 하지 않습니다. 나라가 시키는 대로 쓸 적에는 이래저래 모두 따돌림일 뿐 아니라, 참살림하고 동떨어지게 마련이라, 새말을 짓고 뜻풀이를 새로 붙일 노릇입니다. 그래서 ‘함둥이·함께둥이’ 같은 낱말을 새롭게 지어 봅니다.
‘함둥이 = 함(함께) + 둥이’입니다. ‘둥이’는 어떤 결을 품은 사람을 가리킬 적에 붙이는 말끝입니다. ‘함둥이 = (무엇이) 함께 있는 둥이’란 얼개예요.
따로 ‘함피’처럼 새말을 지어도 됩니다. 때로는 ‘함피’를 쓸 만합니다. 여느 자리나 때라면 ‘함둥이’라는 새말로 “여러 씨줄이나 핏줄이나 갈래가 함께 있는 숨결”이라는 뜻을 나타낼 만합니다. ‘섞이다’는 나쁜 낱말이 아닙니다. 수수하게 쓸 적에는 ‘섞이다’를 쓰면 되고, 밑뜻을 새롭게 살리려는 마음을 얹어 ‘어울리다·어우러지다’라는 낱말을 뜻풀이에 보탤 만합니다.
함꽃 함풀
나란꽃 나란풀
여러꽃 여러풀
사람을 가리키든 사람 아닌 숨결을 가리키든 꼭 ‘-사람’이나 ‘-이’나 ‘-둥이’를 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가리킬 적에도 ‘-꽃’이나 ‘-풀’을 붙일 만합니다. 수수한 사람들을 ‘들꽃·들풀’처럼 가리킬 만해요. 구태여 ‘민중·민초·시민·인민·국민·백성·백인’ 같은 한자말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단출히 ‘꽃·풀’이라는 낱말로 ‘민중·민초·시민·인민·국민·백성·백인’ 같은 사람들을 나타내어도 어울립니다.
이리하여 ‘함둥이 = 함꽃·함풀’이라 여길 만합니다. ‘나란꽃·나란풀’이나 ‘여러꽃·여러풀’처럼 새말을 더 여미어도 어울려요.
새롭게 가리키는 이름을 꼭 하나만 지어야 하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를 헤아려 여러 낱말을 지을 만합니다. 그때그때 새롭게 여러 낱말을 섞어서 쓸 만합니다. 꽃 한 송이를 가리키는 사투리가 여럿이듯, 어떠한 결이나 모습을 나타내는 낱말을 여러 가지로 두면, 우리 스스로 생각을 한껏 북돋우며 넓히고 지필 만하지요.
나란둥이
“피가 섞였다”라는 말씨는 안 나쁩니다. 다만 이 나라(사회·정부)가 이런 말씨를 자꾸 나쁘게 여기거나 낮게 바라볼 뿐입니다. 그래서 이런 굴레를 조금 더 헤아리면서 ‘함둥이’나 ‘나란둥이’ 같은 새말을 짓습니다. “여러 피가 함께 있다”라는 뜻을 수수하면서 쉽게 드러냅니다. “여러 피가 나란히 있다”는 마음을 부드러우면서 상냥하게 나타냅니다.
말짓기는 매우 쉽습니다. 어린이도 어른도 즐겁게 쓸 수 있는 결을 살펴서 지으면 더없이 쉽습니다. 꾸며내려면 어려울 테지만, 살려내려면 수월하면서 즐거워요. 억지로 짜내려면 까다롭거나 힘들 테지만, 사랑하려는 마음을 담을 적에는 가뿐하면서 새삼스럽고 기쁩니다.
이웃을 사랑으로 바라보려 하면 새말은 누구나 새록새록 짓습니다. 스스로 속빛을 사랑으로 가꾸려 하면 새말은 언제 어디에서나 문득 꽃송이처럼 피어납니다. 마음을 가꾸면서 보금자리를 일구는 첫걸음으로 말 한 마디를 지어 보기를 바랍니다. 생각을 빛내면서 아이어른이 한동아리로 보금자리를 돌보는 숨빛으로 말 한 마디를 마음에 고이 심어 보기를 바라요.
쉬운 말이 사랑입니다. 작은 말이 살립니다. 쉬운 말로 사랑을 나눕니다. 작은 말로 온누리에 꿈씨앗을 심습니다.
우리 손으로 하루를 가꾸고, 우리 눈으로 하루를 바라봅니다. 우리 손길로 말글을 가다듬고, 우리 숨결로 이야기꽃을 두루두루 퍼뜨립니다. 아침을 열면서 햇빛을 담은 말빛을 틔우고, 저녁을 여미면서 별빛을 실은 말결을 토닥입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