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너른들 (2022.9.20.)
― 남양주 〈곰씨네 그림책방〉
부천에서 새벽을 열며 오늘은 남양주를 마실하자고 생각합니다. 얼핏 보면 먼길일 테고, 남양주를 들러 서울로 가면 밤에는 고흥에 돌아갈 수 있어요.
책집을 찾아가면서 어느 곳이든 멀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어느 책집으로 마실을 하든 ‘그곳에 그 책집이 있는 뜻’을 길에서 물씬 느끼는 하루입니다. 고흥서 가까운 순천책집조차 길에서 한나절 남짓 보내야 다녀오는데, 이동안 빈책(공책)을 펼쳐 노래꽃(동시)에 얘기꽃(동화)을 씁니다. 책 몇 자락쯤 시외버스랑 시골버스에서 가볍게 읽어요.
모든 아름다운 책은 우리가 쉬고 싶을 적에, 눈을 씻고 싶을 적에, 마음을 달래고 싶을 적에, 무엇보다 이 삶에서 사랑이 무언지 다시 생각하고 싶을 적에, 숲이 없는 매캐한 서울 한복판에서 왜 사는가를 되새기고 싶을 적에, 부드러이 말동무로 곁에 있구나 싶어요. 시골사람이라면 굳이 종이책을 곁에 품지 않아도 풀꽃나무랑 동무하고 해바람비랑 이웃하면서 삶빛을 읽어낼 수 있어요.
전철로 한참 달립니다. 버스로 갈아탑니다. 뚜벅뚜벅 걷습니다. 남양주 〈곰씨네 그림책방〉에 닿습니다. 마침 책모임이 있는 날 같습니다. 바깥 골마루에서 기다립니다. 햇빛이 환하게 드는 싱그러운 자리에 마을책집이 있습니다.
글을 담은 책을 살핍니다. ‘글’이라는 허물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노래로 피어나리라 봅니다. ‘문학’이라는 고치에서 나올 수 있다면 노래가 되리라 봅니다. ‘시’라는 이름을 벗을 수 있다면 바로 노래로 나아가리라 봅니다. 남을 구경한 모습을 옮길 적에는 노래하고 멉니다. 그리 멀잖은 지난날 누구나 부르고 나누며 아이들이 물려받아 새로 부르던 노래는, 늘 스스로 짓는 삶을 스스로 바라보면서 울고 웃은 오늘입니다. 그림이며 빛꽃(사진)을 담은 책도 매한가지입니다. 이름값이나 허울이 아닌 숨결하고 손빛으로 여미고 지어 나누는 꾸러미입니다.
읽히려고 짓는 책이 아닌, 나누려고 짓는 책입니다. ‘남이 알아주기(인정받고픔)’를 바라는 마음은 배움터살이(학교생활)를 오래 하며 ‘셈겨룸(시험성적)’에 기대고 길들어야 하는 틀로 보내느라 몸에 뿌리박게 마련입니다. 처음부터 배움터를 안 다니거나, 배움터를 훌훌 털어내야, 종잇조각(졸업장·자격증)이 아닌 삶길을 보고 살림결을 가꾸고 사랑씨앗을 심어요.
지난날에는 서울도 남양주도 너른들이었습니다. 이제는 부릉부릉 매캐하며 빽빽한 잿마을이어도, 길꽃에 풀벌레노래를 만나고 구름밭에 햇살을 느낄 적마다 너른빛을 새록새록 돌아봅니다. 책짐을 다시 짊어지고 길을 나섭니다.
ㅅㄴㄹ
《하늘을 나는 마법약》(윌리엄 스타이그/김영진 옮김, 비룡소, 2017.2.24.첫/2019.9.3.3벌)
《깃털》(이자벨 심레르/이정주 옮김, 재능교육, 2014.12.5.첫/2021.1.18.8벌)
《푸른 시간》(이자벨 심레르/박혜정 옮김, 하늘콩, 2018.10.12.)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김주희 글·신민재 그림, 길벗스쿨, 2008.12.9.첫/2017.6.30.16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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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마실을 하며 찍은 사진을
한동안 거의 못 씁니다.
예전 하드디스크가 잠들었거든요.
인스타그램에 걸친 사진을
몇 자락 살리면서,
다른 사진을 조금 곁들입니다.
남양주 책집마실을
새롭게 누릴 날을
손꼽아 보는 마음입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