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훈 문학선집 1 : 시선 1 조재훈 문학선집 1
조재훈 지음 / 솔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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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2.10.

노래책시렁 264


《물로 또는 불로》

 조재훈

 한길사

 1991.10.5.



  타박하거나 나무라거나 호통치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못 짓습니다. 고개를 숙이거나 고분고분하거나 따라하는 몸짓으로는 아무것도 안 짓습니다. 꿈을 바라보고 그릴 적에 비로소 짓습니다. 사랑을 생각하고 품을 적에 천천히 지어요. 지음길하고 등지는 꾸지람입니다. 지음빛을 가리거나 누르는 꾸중입니다. 시골에서 살아야만 짓지 않습니다.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짓습니다. 마음을 가꾸기에 짓고, 갈라치기를 하기에 짓는이를 괴롭힙니다. 《물로 또는 불로》를 읽었습니다. 1991년 무렵까지는 이러한 글자락을 문학으로 여겼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처럼 글을 꾸며야 문학상을 받거나 대학교수 자리를 얻습니다. 문학상은 창피하지 않고 대학교수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학상은 노래가 아닌 문학으로 맴돌고, 대학교수는 노래하기가 아닌 창작·비평에 갇힙니다. ‘나이든 이’는 으레 ‘육아’ 같은 일본스런 한자말을 쓰는데, 아이 눈높이로 본다면 ‘육아’란 굴레이자 사슬입니다. 삶을 노래하기보다는 문학을 다루려 할 적에는 삶자리·살림자리·사랑자리하고 모두 동떨어집니다. 아이는 키울 수 없고, 아이랑 함께살 뿐입니다. 문학창작·문학비평이 아닌 삶노래·살림노래로 거듭날 적에 비로소 이 나라에 이야기꽃이 필 만합니다.


ㅅㄴㄹ


두 팔을 번쩍 쳐들고 / 활짝 웃어라, 카메라를 대고, / 주야로 돌봐주신 각하께 / 감사하다고 말하라, 마이크를 대어도 / 쪼르륵 배가 고플 뿐. // 꽃다발은 나에게 무엇인가 / 금메달은 나에게 무엇인가 / 그녀의 메마른 몸 속에는 / 혼자 울던 아버지의 깊은 밤이 / 소낙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죽은 어느 권투 선수의 딸/24쪽)


네모진 성냥갑 / 아파트마다 / 층층이 사람은 / 갇히고, / 벌레가 알을 슬듯 / 자식들을 기른다. // 시멘트 처마 아래 / 녹슨 새장마다 / 쌍쌍이 새들은 / 갇혀서, / 산이 그리워 / 뭐라고 운다 // 다른 나라 / 무더운 하숙집 / 모국어를 / 버리고, / 좁은 빌딩 위로 흘러가는 / 구름을 본다. (無言日/5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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