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속에 피가 흐른다 - 김남주 시선집
김남주 지음, 염무웅 엮음 / 창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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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 숲노래 시읽기 2023.1.24.

노래책시렁 266


《이 좋은 세상에》

 김남주

 한길사

 1992.3.25.



  노래인 척하는 노래가 넘치는 판이기에 둘레에 쏟아지는 노래책을 들추기는 하면서 마음이 가는 일이 드뭅니다. 새로 나오는 노래책은 새롭게 피어나는 마음을 사랑하는 이야기보다는, 어쩐지 말재주를 피우거나 말장난으로 가득한 쳇바퀴가 가득합니다. 왜 그럴까 하고 돌아보면, 아침저녁으로 서울 한복판이나 한켠에서 오락가락 아주 똑같다 싶은 나날을 보내느라, 철빛을 못 보고 못 느끼거든요. 겉옷만 갈아입을 뿐, 맨몸으로 해바람비랑 풀꽃나무랑 들숲바다를 품지 않는 눈망울에는 겉치레 같은 숨소리만 깃듭니다. 《이 좋은 세상에》을 되읽고 또 되읽습니다. 좁다랗고 차디찬 사슬에 갇힌 채 해도 풀꽃도 들숲도 구경조차 못 하던 나날이던 김남주 님은 비로소 햇살 한 조각을 머금고 들꽃 한 송이를 쓰다듬을 수 있자 “이 좋은 누리·나날”을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좋은’은 겹겹이 눌러담은 눈물이 그득한 멍울이에요. 좋아 보인다고 좋을 수 없고, 좋더라도 아름다움이나 사랑이지는 않거든요. 얼핏 좋아 보이는 겉치레에 숨거나 감춘 민낯을 벗겨내지 않으면, 이 땅에는 아름길도 사랑꽃도 깨어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종인 줄 알기만 해서는 종살이를 떨치지 못 합니다. 스스로 사랑을 품은 숲사람인 줄 깨달아야 합니다.


ㅅㄴㄹ


종이 되어 사람이 / 남의 집 문간방에서 떨고 있는 곳 / 그곳으로 주인집 마당으로 / 우리네 꺽정이들이 몰려간 것은 / 우르르 우르르 주먹이 되어 몰려간 것은 / 분노만은 아녔으리라 양반들에 대한 // 개가 되어 사람이 / 남의 집 담을 지키고 있는 곳 / 그곳으로 주인집 곳간으로 / 우리네 길산이들이 몰려간 것은 / 칼이 되어 시퍼렇게 몰려간 것은 / 적개심만은 아녔으리라 부자들에 대한 (종이 되어 사람이/16쪽)


나를 다시 / 국회에 보내주시면 / 여기서 저기까지 둑을 쌓아 / 바다를 막겠습니다 / 농가마다 토지없는 설움을 없게 하겠습니다 / 그리고 그는 유권자들의 의심을 사기는 했지만 / 돌 하나 슬그머니 들어올려 / 퐁당 바다 속에 던졌다 / 그리고 그는 가까스로 / 재선의원이 되었다 // 마지막으로 한번 더 속을 셈치고 / 다시 한번 저를 국회에 보내주시면 / 삼선의원의 관록과 명예를 걸고 / 내 몸을 던져서라도 / 바다가 문전옥답 되게 하겠습니다 / 그리고 그는 유권자들의 야유를 받으며 / 그들의 손에 번쩍 들어올려져 / 철부덕 바다 속으로 내던져졌다. (유세장에서/114∼115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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