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얼굴 없는 2023.1.8.해.



얼굴이 있으면 이름이 있어. 얼굴이 없으면 이름이 없어. 이름은 네 ‘얼빛’을 나타내. ‘네가 너로서 너답게(내가 나로서 나답게)’ 살아갈 적에 너(나)는 네(내) 이름이 있어. 네(내)가 너다움(나다움)을 잊다가 잃으면, 네 얼굴은 빛을 잃고, 네 몸짓은 너 스스로 피어나지 않아. 네가 네 이름으로 네 ‘얼빛’을 누리고 펴기에 네 숨결이 싱그러이 흘러서 삶(살림)이란다. 네가 네 이름을 잊은 채 네 빛을 잃으면, 너는 스스로 생각하는 길이 아닌, 남이 시키는 틀에 따라가면서 꼭두각시나 허수아비 노릇을 한단다. 눈을 봐. 반짝이는 눈망울이라면 얼빛이 살아숨쉬고 이름이 있으며 이름을 편다는 뜻이야. 흐리멍덩한 눈망울이라면 얼빛을 잃고 이름을 잊은 채 길을 헤매지. 길을 잊은 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그래서 일자리를 찾아 떠돌고, 일삯을 받아서 먹고산단다. 길을 찾는 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 그래서 일자리가 아닌 삶자리를 찾고 살림자리를 짓고 사랑자리를 가꾸고 숲자리를 품고 하늘자리로 나아가는 하루를 그리지. 네가 얼굴이 있다면, 얼굴에 아무것도 안 씌우고 안 덮고 안 바르고 안 붙여. ‘얼굴 없는 몸’이기에 얼굴을 꾸미려 든단다. ‘이름 없는 몸’이기에 이름을 꾸미려 들지. 글을 꾸미거나 집을 꾸미는 사람들은, 집이 없거나 글이 없어. 너한테는 무엇이 있니? 너는 얼빛이 있니? 너는 무슨 자리를 찾니? 이름자리·힘자리·돈자리를 찾는다면, 죽음자리로 간다는 뜻이야.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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